용산 “검찰 인사 총선 전 예고…이원석 깜짝 김 여사 수사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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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최근 단행한 검찰 고위 인사에 대해 “검찰총장과 협의를 다 했다”고 16일 강조했다. 14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어제 단행된 검찰 인사는…더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7초 침묵으로 ‘인사 패싱’을 시사한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부딪힌 첫 사례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1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동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1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동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박 장관은 이날 경기 과천 법무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160초가량의 질의응답을 했다. 그는 “이 총장의 인사 연기 요청이 있었는데 협의가 제대로 안 된 것이냐”는 질문에 “‘시기를 언제로 해달라’고 하면 그 내용대로 다 받아들여야지만 인사를 할 수 있나. 그렇지 않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주도한 인사 아니냐”는 질문엔 “그건 장관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인사 제청권자로서 충분히 인사안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건희 여사 수사를 고려한 인사”라는 해석엔 “이번 인사를 함으로써 그 수사가 끝이 났나. 그렇지 않지 않나”라고 되물은 뒤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답했다.

고위 관계자 “송경호 유임은 욕심”…여권 “총장이 인사 제동”

박 장관이 사실상 검찰총장을 공개 질책한 데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인사에 대한 반응이 너무 검찰 시각 쪽에서만 강조된 측면이 있어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는 “오늘 박 장관의 메시지는 ‘인사권자에 항명 말라’는 용산의 의중이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별도로 중앙일보에 “이번 인사에 김 여사 명품백 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이 총장이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김 여사 명품백 수사를 “신속·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하기 전인 지난달부터 인사안을 짜고 있었고 이 총장의 전담수사팀 구성 지시는 인사 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검검사급 검사 보직변경 인사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검검사급 검사 보직변경 인사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송경호 전 지검장을 부산고검장으로 이동시킨 것이 “수사 방해”라는 검찰 일각의 비판에 이 관계자는 “2년 넘게 중앙지검장을 한 사람을 언제까지 놔둬야 하느냐. 유임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일축했다. 2022년 5월 임기를 시작한 송 지검장은 통상 1년이던 역대 중앙지검장 재직 기간의 두 배가량을 재임했었다.

다른 법무부 고위 관계자도 “이 총장이 인사 시기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박 장관으로선 이미 인사를 미룰 대로 미룬 상태였다”며 “인사 시기 결정은 장관의 권한”이라고 못박았다. 박 장관이 지난 2월 취임한 뒤 4·10 총선 때문에 정기인사를 늦춘 상태에서 공백을 더는 놔둘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총선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경찰이 현재 수사 중인 수백 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공소시효가 선거일 후 6개월까지인 터라 2~3개월 내 검찰로 오기 때문이다. “정치인 연루 사건이 온 뒤 인사로 조직을 흔들면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16/뉴스1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16/뉴스1

박 장관의 등판과 함께 여권에선 이 총장 책임론도 제기됐다. 여권 관계자는 “검찰이 2년간 김 여사 수사 관련 아무것도 안 하다가 법무부가 인사를 짜려 하니깐 검찰총장이 갑자기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인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며 “수사는 빨리하고 털어야 하는데 이 총장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원석 “어려울수록 초심과 기본으로 돌아가야”

갈등이 표면화함에 따라 후속 차장·부장검사 인사는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중앙지검 1·2·3·4차장검사를 포함한 김 여사 수사팀(형사1부·반부패수사2부)을 어떻게 새로 짜느냐가 관건이다. 법무부 검찰국은 이날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8기) 이상 검사들에게 “내일(17일)까지 근무 희망지를 제출하라”고 업무 연락을 보냈다. 박 장관도 “중앙지검 1∼4차장이 동시에 비어있기 때문에 후속 인사는 최대한 빨리해서 (지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할 생각”이라 밝혀 이르면 다음 주에 후속 인사가 발표될 전망이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 수사 및 검찰 인사 등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5.14/뉴스1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 수사 및 검찰 인사 등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5.14/뉴스1

이원석 총장은 이날 인사가 난 39명의 검사장과 오찬을 했다. 이 총장은 이 자리에서 “어려울수록 초심과 기본으로 돌아가 검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살펴보면 무엇을 할 것인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며 “오로지 증거에 따라 진실을 찾고 법리에 따라 결정하면 바로 법률가로서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이 총장이 떠나는 간부들에겐 ‘갈 길 머니까 빨리 가라’고만 하고 말을 아꼈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과 협의를 다 했다는 박 장관의 말에 대해선 “참 이상한 협의도 다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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