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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개혁은 불가능…'연금보험료 13%' 여야 협치 1호 삼을 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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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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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난해 9월 국회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의 암묵적 부채를 1825조원으로 추계했다. 인구로 나누면 1인당 3540만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월 개혁이 늦어지면 연 50조원가량 부채가 늘어난다고 봤다. 하루가 급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이번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건너뛸 게 거의 확실시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지금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조급하게 하는 것보다 22대 국회로 넘겨서 좀 더 충실하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그간 물밑 접촉을 이어오던 여야와 정부가 대통령의 회견 이후 얼어붙어 버렸다. 4.10 총선~21대 국회 임기(5월 29일)의 연금개혁 골든타임이 이렇게 사라져 간다.

4차 이어 5차 재정계산도 허사 

국민연금법 제4조에는 재정이 장기 균형을 유지하도록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를 조정하고, 재정 전망과 보험료의 조정 및 기금의 운용 계획 등이 포함된 운영계획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하게 돼 있다. 5년마다 시행하는 재정재계산을 말한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려는 필수적인 절차이다. 현 정부는 재정재계산(5차)을 해서 지난해 10월 18가지 시뮬레이션 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정부안이 뭔지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강조해온 터라 단일 개혁안을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연금개혁 불씨 되살리려면
특위 '넘사벽 9%' 깬 건 대단
구조개혁에는 시간 더 필요
"연금개혁만한 협치모델 없어"

 윤 대통령은 9일 회견에서 "6000쪽에 가까운, 책자로 하면 한 30권 정도의 방대한 자료를 국회에 냈고,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걸 만들어서 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선 약속을 이행했다고 말했다. 국회에 선택을 맡겼다고 해놓고는 회견에서는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했다. 국회 연금특위가 막판 조율할 수 있는 여지를 닫아버렸다. 전 정부는 2018년 4차 재정재계산 때 사지선다 안이라도 냈다. 당시 국민의힘은 전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래놓고 5년 후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5차 재정재계산이 무위로 끝날 판인데도 별 말이 없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보험료 13%-대체율 44% 대안 

 국회 연금특위가 지난 2년 가까이 허송세월했다. 그러다 막판에 힘을 냈다. 공론화위원회 토론과 설문조사에 이어 막판 협상을 했고, 지난 7일 보험료를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에서 어긋났다. 국민의힘은 40%를 43%로, 민주당은 45%로 올리는 안을 고집했다. 보험료 4%p 인상 합의는 큰 의미가 있다.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6년간 손을 못 댔다. 요샛말로 하면 9%가 '넘사벽(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료율 13%'를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 45%로 올리는 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재정 안정에 역주행한다. 대체율 인상 효과도 40년 후 나타나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자. 노후빈곤율이 높아서 조금이라도 보완하기 위해 대체율을 올리자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공론회위원회 시민대표 500인 조사에서 확인됐다. 소득보장론(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0%→50%)을 지지한 비율이 56%, 재정안정(보험료율 12%, 대체율 40%)은 42.6%였다. 22대 국회에서 새로 논의해도 소득대체율 인상론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대체율 인상은 거대 야당 민주당의 당론에 가깝다.
 상황을 종합하면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4%안'이나 그 언저리가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쉽긴 하지만 '13%-44%' 선에서 합의하는 게 (개혁을)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소득대체율이 44%로 올라가면 보험료 인상분 2%p를 상쇄한다. 그래서 보험료율을 13%로 4%p 올리더라도 순수 인상 효과는 2%p이다. 그러면 기금 고갈 시기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9년 늦춰진다. 2093년 누적적자가 1293조원(현재가치 기준) 줄어든다. 미래가치로는 3738조원 줄어든다. 효과가 작지 않은 것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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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샷 개혁보다 단계적 개혁

 현 제도가 지속가능하려면 보험료율이 20%로 올라야 한다. 한꺼번에 올릴 수 없다. 설령 그리한다고 해도 중간에 13% 구간을 지나가야 한다. 양재진 교수는 우선 13%로 올려놓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한다. 모두에게 박수받는 '원샷 개혁안'은 없다. 특히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기다린다. 윤 대통령이 "임기 내 개혁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상황이 절대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은 구조개혁을 강조하는데, 그건 더 어렵다. 국민의힘이 구조개혁 밑그림을 낸 적도 없다. 기초연금을 손보자는 건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부분 통합하자는 건지, 국민연금·공무원연금을 통합하자는 건지 모호하다. 기초연금 대상자를 축소하고 저소득층 연금액을 올리는 게 구조개혁이라면 굳이 국민연금 개혁과 같이 안 해도 된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끌 필요가 있다. 여야가 소득대체율 2%p 이견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21대 국회에서 처리해 봄 직하다. 아직 2주 남았다. 22대 국회에서 한다면 이를수록 좋다. 관련 자료가 수북이 쌓여있고, 토론도 할 만큼 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협치 1호 정책으로 이만한 게 없지 않을까.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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