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개관사정(蓋棺事定)과 두보(杜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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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스틸컷. 내용과는 무관

영화 〈파묘〉 스틸컷. 내용과는 무관

내 인생의 목표는 사후(死後)에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존립과 위상을 보장받는 것이라네.

배우 겸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친구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일찌감치 자신의 연기론을 발견했다. 그는 패턴화된 연기 테크닉을 거부했다. 배역에 ‘깊이 몰입할 것’을 배우에게 요구했다. 오늘날 ‘메소드(method) 연기론’의 원조다.

이번 사자성어는 개관사정(蓋棺事定)이다. ‘개관’은 ‘관 뚜껑을 덮다’라는 뜻이다. ‘사정’은 ‘어떤 일이 결정되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사후에야 비로소 한 인물의 평가가 가능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본래 두보(杜甫. 712-770)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 이 7자가 ‘개관사정’으로 압축됐다. 오지로 유배당해 낙담한 젊은 지인 소혜에게 두보가 위로를 담아 건넨 시의 일부다. 대략 ‘관 뚜껑 덮기 전까진 아무도 인생 전체를 평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만약 젊은 날이 ‘총(聰)’이라면, 노년기는 ‘혜(慧)’다. 한창나이인 소혜에게 총기가 없어 두보가 위로를 건넨 것은 아니었다. 소혜에게 그가 전수한 것은 ‘인생은 길고 기회는 여러 길로 다시 찾아온다’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지혜였다. 하지만 이 ‘개관사정’을 자신에게 건넨 위로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안정된 생계를 꾸리지 못한 채 피난민으로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무렵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젊은 두보는 관직에 뜻을 둔 패기만만한 지식인이었다. 두보는 중산층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두보의 조부와 부친 모두 지방 정부에서 벼슬을 했다. 병약한 두보는 유년기에 모친과 사별했다. 이후 고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낙양(洛陽)과 인근 도시에서 성장했다. 두보는 문장과 시에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다. 당나라는 과거에서 시작(詩作) 능력을 중시했다. 관료 선발 과정에 부패가 없지 않았지만, 시라면 누구에도 뒤지지 않던 그가 중앙 정부 관료의 꿈을 끝까지 접지 못한 이유다.

755년 중국 대륙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긴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이 발생한다. 두보의 나이 43세 때의 일이었다. 오랜 구직 활동 끝에 한직이지만 중앙 관료 생활을 막 시작한 무렵이었다. 만약 이 갑작스러운 전란(戰亂)이 아니었다면 두보도 수도 장안에서 차츰 승진하며 평탄한 관료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난세를 만나 그의 관료 꿈은 꺾였지만, 재능에 노력을 더해 율시(律詩)와 절구(絶句)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 중국어에서 성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율시와 절구에서 특히 ‘각운(脚韻)’은 쉽지 않다. 지식인에게도 꽤 난이도가 높은 글쓰기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 사람들은 두보를 시성(詩聖)으로까지 존칭하며, 그의 시를 꾸준히 애송(愛誦)한다.

무엇보다 두보의 시는 분량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현재 약 1500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매주 1편을 30년 넘게 창작해야 가능한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참고로, 한글 창제 이후 번역된 ‘두시언해(杜詩諺解)’ 분량도 무려 25권 17책에 달한다.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가 정식 제목이다. 우리 옛말 연구의 귀중한 문헌 가운데 하나다.

두보의 시풍(詩風)은 휴머니즘과 서정적 색채가 강하다.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처럼 사실주의로 분류되는 작품이 많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전란에 휩싸였지만, 산천은 여전하구나)’. 이렇게 시작되는 ‘춘망(春望)’처럼 유교 지식인의 입장에서 우국충정을 노래한 시도 있다.

두보는 58세에 거처를 겸하던 작은 배에서 세상을 떴다. 늘 정착하는 삶을 동경했으나, 전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성기를 보내야만 했던 한 지식인의 애환이 그의 작품에 물씬 묻어난다.

찰랑이는 물결의 흐름 위에서 눈을 감는 순간, 충만했던 시인의 삶으로 회고(回顧)하며 두보는 큰 후회가 없었으리라.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난세(亂世)지만 기록도 보존했다. 천 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을 두보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관사정’은 긴장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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