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보다 더하다”…부동산 PF 시행사에 연 100% 이자 받은 신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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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진행 중인 A 시행사는 토지 매입과 공사비 등 초기 개발 자금이 부족해 부동산 신탁사인 B로부터 돈을 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자금은 B 신탁사 임직원이 개인 명의로 설립한 다른 회사들에 빌렸다. 임직원에게 빌린 자금 일부는 1년 이자가 100%로, 법정 금리(연 20%)를 훌쩍 뛰어넘는 고리였다. 하지만 B 신탁사와 사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A 시행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임직원에게 높은 이자를 줄 수밖에 없었다. A 시행사가 B 신탁사 임직원에게 빌린 돈은 총 25억원인데, 지급한 이자만 7억원(연 28%)에 달했다.

부동산 PF 시행사에 불법 사금융과 다름없는 이자 장사를 한 부동산 신탁사 대주주 및 임직원이 적발됐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금 구하기가 어려워진 시행사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다. 7일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신탁사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신탁사 대주주 및 임직원의 사익 추구 행위 등을 다수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토지를 먼저 매입하고, 관련 사업 진행을 위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탁사는 토지 매입 등 개발 비용을 직접 빌려주거나 다른 곳에서 끌어온 개발비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자금이 부족한 시행사일수록 신탁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C 시행사는 D 신탁사 대주주와 계열사에 토지 매입 자금 명목으로 20여회에 걸쳐 1900억원 상당을 빌렸다. 이미 지급한 이자만 150억원(평균 연 18%)에 달했다. 일부 자금은 시행사가 받을 개발 이익의 45%를 이자 명목으로 주기로 계약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상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이 시행사를 대상으로 미등록 불법 대부업을 한 셈”이라며 “겉으론 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했지만, 시행사가 신탁사와 관계 유지를 위해서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들에게 개발 이익 일부를 챙겨준 것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신탁사의 ‘갑질’은 시행사뿐 아니라 거래하는 용역 업체에도 이뤄졌다. E 신탁사의 대주주와 임직원은 분양 대행업체 등에 45억원 상당의 금품과 법인카드를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부동산 개발 사업 과정에서 취득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사례도 적발했다. F 신탁사 직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정비구역 지정 일정, 예상 분양가 등 사업 분석 자료를 확인해 같은 사업장 내 다른 아파트와 빌라를 매입했다. 금감원은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를 수사 당국에 통보하고 입증 자료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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