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메치던 이 손으로 체육진흥 이룰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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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하형주 상임감사는 손이 솥뚜껑만 하다. 그는 “이 손을 국민이 운동을 통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체육 정책을 바로 세우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하형주 상임감사는 손이 솥뚜껑만 하다. 그는 “이 손을 국민이 운동을 통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체육 정책을 바로 세우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옛날사람 뭐 볼 거 있다고 이리 만나자 합니꺼. 기억해주시는 분도 이젠 많이 없을 낀데. 허허허.”

최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유도 영웅’ 하형주(62)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체육공단) 상임감사는 특유의 시원한 너털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그는 현역 은퇴 후 38년간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지난해 8월 체육공단에 부임해 체육 행정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올해로 LA올림픽 40주년을 맞이한 하형주 감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부터 대한민국에서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고민했다”면서 “인생 1막은 운동선수로, 2막은 교수로 최선을 다했다면, 올바른 체육 정책을 세우기 위해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3막 정도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활짝 웃었다.

현역 시절의 하형주 감사. 잘 생긴 얼굴과 헌칠한 체격, 세계 최고의 실력을 겸비한 스포츠 스타였다. 중앙포토

현역 시절의 하형주 감사. 잘 생긴 얼굴과 헌칠한 체격, 세계 최고의 실력을 겸비한 스포츠 스타였다. 중앙포토

LA올림픽 당시 22세 유도선수 하형주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얼굴’이었다. 훤칠한 체격에 깎아지른 듯한 외모, 세계 수준의 경기력까지 겸비해 스타로 떠올랐다. 종주국 일본의 입김이 거세던 시절, 편파 판정을 딛고 남자 유도 하프헤비급(95㎏ 이하)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국민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우승에 이르는 길은 험난했다. 상대를 매트에 시원하게 눕히고도 ‘한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세계랭킹 1위 미하라 마사토(일본)를 비롯해 라이벌들을 줄줄이 제압하며 기어이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이 경기를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청자가 세 명이나 심장마비로 사망할 정도로 매 경기가 치열한 승부였다. 하 감사는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유가족을 일일이 찾아가 조문하고 위로했다”고 당시 기억을 되새겼다.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남다른 노력을 더한 게 ‘유도 천재’를 넘어 ‘세계 1인자’로 올라선 배경이다. 하 감사는 “현역 시절 우리나라에 헤비급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제대로 된 연습 상대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면서 “동아대 재학 중엔 고육지책으로 학교 뒷산 편백나무 숲에 올라 나무 둥지를 붙잡고 밭다리 후리기, 허벅다리 걸기 등 기술을 연마했다”고 털어놨다. 하형주 감사의 좌우명은 ‘노력 세 배’다. “진짜 세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훈련하고 경기하겠다는 의미”라 설명한 그는 “경쟁자보다 한 방울이라도 더 흘린 땀의 가치를 믿는다”고 했다.

대한민국 체육 정책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하형주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김종호 기자

대한민국 체육 정책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하형주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김종호 기자

7월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의 목표는 금메달 5~6개다. 1984년 LA올림픽 당시와 비슷하다. 갈수록 국제 경쟁력이 줄어드는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 대해 하 감사는 “과거엔 ‘상대를 이긴다’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것으로 목표 자체를 바꿔야 한다”면서 “남과의 승부는 아무리 이겨도 목이 마르다. 자신을 이기면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감사의 별명은 ‘왕발’이다. 학창 시절 310㎜나 되는 큰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하지 못해 종종 맨발로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유도 선수로서 진짜 무기는 ‘솥뚜껑만한’ 손이었다. 하 감사는 “상대 도복의 깃을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근성으로 세계를 제패했다”면서 “이제는 온 국민이 운동을 통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체육 정책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 힘을 쏟겠다. ‘이거다’ 싶은 방법이 보이면 이 두 손으로 꽉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왕발’ 하형주는

◦ 출생 1962년 6월3일 경남 진주(62세)
◦ 출신교 부산체고-동아대-동아대 대학원
          성균관대 대학원
◦ 현역시절 체급 하프헤비급(95㎏ 이하)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하형주 감사(맨 오른쪽). 왼쪽은 양궁의 서향순, 가운데는 유도의 안병근. 중앙포토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하형주 감사(맨 오른쪽). 왼쪽은 양궁의 서향순, 가운데는 유도의 안병근.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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