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벌고, 해외서 썼다…깜짝 성장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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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체감경기 양극화, 왜

경기 성남에서 사무용품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안모(65) 사장은 최근 경제성장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 경제가 1분기에만 1.3%(전기 대비) ‘깜짝 성장’을 했다는 소식이 전혀 체감되지 않아서다. 안 대표는 “국내외 쇼핑몰을 통해 주로 판매하는데 올해 들어 매출은 1년 전보다 20% 감소했다”며 “1년 새 2명이 퇴직했는데 직원을 뽑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변 중소기업 얘기를 들어봐도 경기가 나아졌다는 사람은 없더라”고 토로했다.

1분기 깜짝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기 체감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최근 대기업 생산이 작년보다 8% 가까이 늘어날 때 중소기업은 오히려 감소한 게 대표적이다. 반도체 대기업이 견인하는 성장 구조가 반도체와 무관한 중소기업에 대해선 낙수효과를 거의 불러오지 못한다는 풀이가 나온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발표 이후 공개된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선 이 같은 현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제조 대기업 생산지수는 111.1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7.9% 증가했다. 2021년 4분기(10.2%) 이후 9분기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제조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94.3으로 같은 기간 2% 줄었다.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2022년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감소하다가 지난해 4분기(0.1%)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1분기 들어 다시 감소했다.

대·중소기업의 격차를 가른 건 반도체다. 국내 반도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집중도가 크고, 조선·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고용 파급효과가 적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1분기 제조업 생산지수는 1년 전보다 6.1%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통신업을 제외하면 1.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전산업 생산은 0.7% 증가했는데 반도체 생산 증가율이 44.8%에 달하면서 지수를 끌어올렸다.

1분기 성장률(한국은행 GDP)이 1.3%에 달하는데 전산업 생산 증가율(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은 0.7%에 그친 것도 반도체 영향이다. 기획재정부는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부가가치가 성장률과 비교해 산업활동동향에선 과소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다기보단 반도체만 좋다. 주력 산업 중에서도 호조를 보이는 건 반도체뿐”이라고 말했다.

수출 외에 1분기 성장률을 견인한 또 다른 요인은 민간소비 증가다. 그러나 자영업자도 경기 반등을 체감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성장률 통계상 1분기 민간소비는 전 분기보다 0.8% 증가했지만, 산업활동동향에선 1분기 소매판매가 전 분기 대비 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지표가 정반대로 갈린 데는 해외 소비에 대한 반영 여부가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은 “GDP와 달리 산업활동동향에선 해외에서 한 소비는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의 설명대로 내국인의 해외 소비는 GDP 상 민간소비에 들어가지만, 산업활동동향 소매판매엔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관공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민 해외관광객은 742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497만9000명)는 물론 직전 분기(652만명)보다 크게 늘었다. 고금리로 소비 여력이 줄었음에도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여행이 폭발한 데다 일본 엔저로 일본여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해외에서 쓴 소비가 성장률에 잡히면서 내수 효과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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