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내가 누군지 아니?” 그 장이수가 신의 한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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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범죄도시4’에서 제2의 주인공에 꼽히는 전직 조폭 장이수(박지환·왼쪽).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영화 ‘범죄도시4’에서 제2의 주인공에 꼽히는 전직 조폭 장이수(박지환·왼쪽).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장이수가 다 살렸다” “4편은 장이수가 주인공” “폴리스 다크 아미(FDA) 최고다”(이상 메가박스 예매앱 실관람평)….

개봉 13일째 800만 고지를 돌파한 ‘범죄도시4’에서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의 수사를 돕는 장이수(박지환) 캐릭터가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투자·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는 6일 ‘범죄도시4’가 이날 오전 8시 누적관객 819만3211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장이수는 불법 도박장을 하다 마석도에게 혼쭐이 난 1편부터 줄곧 신스틸러였다. 장첸(윤계상)의 칼에 죽은 줄 알았지만 2편에서 살아 돌아왔다. 마석도에게 매번 이용 당하며 “내 아임다” “또 또 못살게 군다” 등 명대사를 낳았다.

‘범죄도시’ 1편(2017)에선 빌런 장첸(윤계상)의 칼에 쓰러지지만, 2편(2022, 아래 사진)에서 부활해 장첸인 척 하는 등 극의 재미를 더해왔다.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 1편(2017)에선 빌런 장첸(윤계상)의 칼에 쓰러지지만, 2편(2022, 아래 사진)에서 부활해 장첸인 척 하는 등 극의 재미를 더해왔다.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4편에선 비중과 함께 활약상도 커졌다. 장이수가 전직을 살려 사이버 도박조직 검거를 위해 필리핀에 가짜 도박장을 차리는 과정을 진두지휘한다. 그의 비중을 이처럼 키운 건 ‘범죄도시4’ 각본 초고를 맡은 오상호(49) 작가다. 범죄 실화를 소재로 억울한 피해자들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는 사적 복수극 ‘모범택시’(SBS) 시즌 1·2로 시즌제 드라마 성공 사례를 낳은 그다.

지난달 개봉 직후 전화로 만난 오 작가는 “4편에서 장이수는 마동석 다음가는 주인공”이라며 장이수의 매력을 “뒷골목에서 자수성가한 캐릭터다.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경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잘 꾸려가는 생명력이 사랑스럽다”고 했다.

‘범죄도시’ 2편(2022).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 2편(2022). [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석도가 빌런(악당)을 이길 거란 결말을 다 알고 보죠. 관객을 이야기에 붙들어 놓을 대안을 고민하던 중에 장이수가 생각났어요. 마침 1편에서 장이수가 도박장을 했는데, 그 짓을 계속했을 것 같았거든요.”

오 작가가 ‘범죄도시’ 시리즈에 합류한 계기도 박지환이 노숙자 역할로 웃음을 책임졌던 영화 ‘유체이탈자’(2021)다. 이 영화의 각색을 맡았던 그는 “박지환 배우가 연기 스펙트럼도 넓고, 스크린 속 이미지와 달리 책 읽고 사색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유체이탈자’ 제작자이자, ‘범죄도시’ 시리즈를 공동 제작한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오 작가를 눈여겨 보고 ‘범죄도시4’ 각본을 제안했다.

오상호 작가

오상호 작가

2021년 ‘모범택시’ 시즌1 대본을 마무리하던 때였다. ‘범죄도시2’(2022)가 개봉하기도 전이다. 이 시기 ‘범죄도시’ 제작진은 3·4편 제작을 동시에 착수했다.

오 작가는 “마동석 형님에 대한 팬심”과 더불어 ‘범죄도시’ 세계관에 특히 끌렸다고 했다. 드라마 ‘모범택시’에선 “법대로 해”라며 비아냥 대는 가해자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피해자들을 위해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사적 복수에 나선다.

오 작가는 “‘범죄도시’도 ‘고구마’가 없다. 두 작품의 세계관이 미묘하게 같은 토양에 있는 느낌이라 ‘범죄도시’ 제작진과도 말이 잘 통했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원안을 토대로 각본가가 초고를 쓰면 마동석이 제작진과 함께 매 장면, 대사 하나까지 반복 검토하며 완성한다. 마동석에 따르면 시나리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살펴보는 ‘신 바이 신’ 작업에 하루 12시간씩 꼬박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한다. ‘범죄도시’ 1편은 이 과정을 4~5년에 걸쳐 총 30번, 2편부턴 8~10회씩 반복했다.

그 토대가 되는 초고 뼈대를 오 작가가 작성했다. “아날로그 마석도가 디지털 수사하는 코미디”를 염두에 두고 온라인 도박 소재를 택했다고 한다. “기획자 마동석의 의도와 방향성이 명확해 개발 과정에 시간 낭비가 없었다”고 그는 돌이켰다.

“마동석 선배가 첫 기획 회의 때부터 ‘범죄도시’는 수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더군요. 수사 과정은 과감히 빼고 그 결과만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여느 형사물보다 허술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호흡이 빠른 게 장점입니다. 그만큼 마석도의 액션과 빌런, 장이수 같은 캐릭터의 활약에 집중할 자리가 생기는 거죠.”

오 작가는 시리즈물이 장수하기 위해선 “과감한 변화가 무조건 유리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대중으로부터 신호가 온다. 제작진이 먼저 급격한 새로움을 추구하거나, 너무 가르치려 들거나, 섣불리 교훈을 던지려는 시도는 불리할 수 있다”면서 “언젠가 마석도를 이기는 빌런도 그려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 선택이 옳은지 여부는 관객 평가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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