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훈 칼럼

슬픈 보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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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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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이 시키는 것 반대로만 했더니 당선되더라. ‘이·조 심판’ 꺼내지도 않았고 당이 내려보낸 현수막은 단 한 번도 안 걸었다.” 총선 뒤의 충격적인 이 토로는 국민의힘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생환한 김재섭 당선인의 얘기다. 참 슬픈 보수 정치의 현주소다.

20세기까지는 “주로 보수 정당을 찍고 가끔은 진보 정당 찍는” 구도였다. ‘보수=반공·성장’의 선명한 논리가 우세였다. 그러나 북한의 쇠락, 냉전 해소에 보수의 무기로서 ‘반공’은 효용이 줄어 왔다. 불평등 해소에 진척이 없자 ‘성장’ 일변도 논리 역시 설 땅이 좁아졌다. ‘경쟁’과 ‘효율’, 그리고 ‘세계화’만을 외친 1990년대 신자유주의에의 반감도 한몫했다. 정치에 눈뜰 시기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차떼기’를 기억에 심은 40~50대는 민주당의 우군이 된 지 한참이다. 그 위로 전두환 시대 절망의 청년기를 보낸 86세대는 대거 60대로 진입하고 있다. 아래론 내 삶과 행복이 우선인 젊은이들의 개인·자유주의 확산이다. 남은 지원군은 영남·70대 이상의 사면초가다. “주로 진보 정당을 찍고 가끔은 보수 정당 찍는” 시대로 가는 건가.

생명력·정체성 잃은 보수정당 위기
확고한 ‘보수주의’ 신념 재확립하고
보수전략 싱크탱크·아카데미 통해
젊은 층 미래의 보수 리더 육성해야

그런데 보수주의는 그리 늙고 잘못된 논리일까. 그 토대를 보자. “인간은 (기독교리 대로) 원죄를 지닌 불완전 존재다. 이성적이 아니니 완전한 평등 같은 추상적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경험·역사에서 도출돼 유효성을 인정받은 상식·지혜가 길잡이다. 1g의 경험이 1t 이상만큼 가치 있다. 사회를 실험실로 여기는 사회주의는 옳지 않다. 이상만의 세계는 ‘사실’에 의해 폭발된다. 체력·재주 등이 다르니 불평등은 자연스럽다. 인간의 최우선 동기는 자기 이익과 소유욕이다. 그러니 사유재산권과 사기업, 자기이익의 합리적 추구인 자본주의가 자연스럽다. 인간에겐 ‘자기 향상과 교환의 본능’이 있다는 애덤 스미스 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제도는 자유시장이다. 사회는 부품만 바꿔 해체·조립할 기계가 아니다. 모든 게 얽힌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다. 이런 자연스러운 질서를 전복하자는 모든 시도는 무의미하다.” 평등 최우선인 진보와는 대비다.

여기까지라면 ‘꼰대’ 면하기가 쉽진 않겠다. 보수의 진정한 강점은 이후의 치열한 논박과 진화다. “사회가 유기체라면 보존을 위해서라도 변화와 개혁이 필수다. 어떤 생물체도 변화 없이 생존 없다. 혁명당하기보다 스스로의 변화가 더 낫다. 건강 잃은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면 유기체 전체의 생명도 위태롭다. 그러니 약자들 보듬어 치유할 따뜻한 온정적 보수여야 한다. 뭘 버리고 뭘 지켜 계승할지 고민하라. 상대가 더 훌륭하면 베끼는 데도 주저말라. 이념에의 집착이 약한 건 보수의 강점이다. 유연하지만 조심스럽게 숙고하는 개혁, 그게 보수다.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나라는 사랑스러워져야 한다.”(박지향 『정당의 생명력』 등 참조)

총선 참패는 대통령의 독선이 주 요인이었다. 그러나 처절히 성찰해야 할 선거의 주체는 국민의힘이다. 보수에의 신념이 확고했다면 진보의 각종 포퓰리즘을 매섭게 추궁해야 했다. 다급하게 따라가기보다는 ‘규제 철폐’‘기업하기 좋은 자유’‘기득권 내려놓기’‘사회적 약자 배려’ 등을 보수의 기치로 대중을 파고 들어야 했다. ‘이·조 심판’이란 구호가 과연 대한민국 보수 대표의 무게인가. 뭘 노력해 온, 그래서 뭘 하겠다는 보수 정당인가. “권력자들의 인생 이모작 정당, 공천 때만 나타나는 떴다방”(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일 뿐이다. 정체성도, 생명력도, 영혼도 없으니 대통령도, 총선 사령탑도 보수·민주주의에 큰 고민 없었을 이들에게 내주며 방패막이로 연명할 처지다.

당의 차기 리더는 ‘보수주의의 전사’로 이 당을 재탄생시켜야 한다. 대통령에게만 의존해선 보수의 미래란 없다. 유승민·이준석 등 바른 말 내쳐 온 게 이 당의 습성이다. 대통령에게 기생해 자기 권력 지키며 인재 안 키우니 진정한 보수 전사의 씨가 말라 왔다. 구미 맞는 조사나 해 온 여의도연구원일랑 해체하고 보수의 전략 싱크탱크와 정치 아카데미를 만들라. ‘젊은 보수’들을 키워 당정에 발탁, 미래의 보수 리더를 키워라. 머리 굳은 관료·검찰·경찰 대신 창의성과 조정 능력, 기업가 정신 갖춘 이들로 보수의 주축을 확 바꿔야 한다. 외연 확장, 설득과 홍보 역시 보수의 병기여야 한다. 왜 모든 시민단체나 노동·환경·복지는 진보 편이라 지레 푸념만 하는가. 중원 건너 좌측으로 전진해야 할 보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그 모델이다. 보수당은 대학을 갓 졸업한 캐머런을 당의 싱크탱크인 조사국에 영입, 재무·내무장관 보좌-예비내각 교육담당으로 줄곧 육성했다. 13년 동안 3전 전패 수렁의 보수당에 재집권을 안겨 준 건 캐머런이다. 그는 당수 취임 후 당의 로고를 연두색 나무로 바꿨다. 진보의 오랜 전유물이 그 ‘환경’이었다. 지금 국민의힘이 새겨야 할 말이 변화·개혁을 다짐한 그의 취임사다. “공감 받을,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보수로 나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