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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맑은 웃음 사라져간다…경수초교 마지막 어린이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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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호 01면

초저출산 시대의 5월 풍경

3일 경기도 안산 경수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장래 희망을 그린 캐리커처를 들고 있다. 전교생이 87명인 이 학교는 내년에 인근 경일초등학교와 통합한다. 최기웅 기자

3일 경기도 안산 경수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장래 희망을 그린 캐리커처를 들고 있다. 전교생이 87명인 이 학교는 내년에 인근 경일초등학교와 통합한다. 최기웅 기자

“선생님! 선생님은 왜 새로운 학교로 저희랑 같이 안 가세요?”

어린이날을 앞둔 3일, 아이들의 깔깔 웃음이 넘쳐나도 모자란 날.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웃음 너머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을 텐데, 어쩌죠?” 어린 학생이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한 채 묻자 담임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렇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할 거야. 즐거운 추억도 늘 같이 쌓아 갈 거고.”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경수초등학교. 87명의 재학생은 올해 이 학교에서 마지막 어린이날을 맞이한다. 내년 3월부터는 같은 성포동에 있는 경일초등학교와 통폐합되기 때문이다. 2000년 개교한 지 25년 만에 학교 문을 닫는 셈이다. 초등학교 이름도 ‘경수’ 대신 ‘경일’로 통일되고 지금의 학교 공간도 추후 다르게 바뀔 예정이다.

내년이 되면 정든 아이들과 헤어질지 모르는 담임 선생님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쩌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경수초등학교’도, ‘담임 선생님’도 아예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작지만 마음을 담은 ‘마지막 어린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와, 나랑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연도별 초등생 수

연도별 초등생 수

쓱싹쓱싹. 지난 2일 캐리커처 작가 네 명이 경수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학교 통폐합 예산을 활용한 첫 행사였다. 멋진 그림이 완성되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3학년 남학생 한 명이 “나도 아저씨들처럼 훌륭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거야”라고 외치자 곁에 있던 친구가 “나는 그림을 멋지게 그리는 화가가 될 거야”라고 맞장구쳤다. 꿈에 더해 학교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는 행사였다.

이렇게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어울림을 배우는 터전인 초등학교가 위기에 봉착했다. 2000년 경수초등학교 개교 당시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48명에서 지난해 0.72명으로 절반 이상 급감하면서 학령인구 또한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초·중·고교생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 수는 2028년이 되면 200만 명을 밑돌아 187만580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574만9301명의 3분의 1도 안 되고 올해 248만1248명보다도 25%나 줄어든 수치다. 초·중·고교 전체 학생 수도 올해 513만여 명에서 2026년에는 483만여 명으로 줄면서 50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해졌고, 그 와중에 매년 10명 안팎이 입학하던 경수초등학교도 통폐합 대상에 포함되게 됐다.

같은 학교로 거듭나게 되는 경일초등학교와는 걸어서 고작 7분 거리.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마음속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두 학교는 ‘어울림 행사’를 준비했다. 일종의 ‘통폐합 연착륙’ 기획이었다.

3년간 전국 초·중·고 72개교 통폐합…수도권에서도 13곳

‘어울림 행사’는 두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몸을 부대끼며 어울리는 자리로 마련됐다. 지난달엔 두 학교 2학년과 3학년생이 학교 근처 노적봉에서 같이 게임도 하고 생태 체험도 했다. 2학년 남자 어린이는 “학원에 함께 다니는 친구도 있고 해서 크게 낯설지 않아 다행이었다. 같이 게임을 하고 나니 경일초등학교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며 웃었다. 반면 5학년 여자 어린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자니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그냥 쭉 여기서 공부하다 졸업하고 싶다”며 우려를 나타내 대조를 이뤘다.

학부모들도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1학년생 학부모인 이모(42)씨는 “아이가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 적응하고 있는 참인데 내년엔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니”라며 “저도 새 학교에서 새 부모들과 인간관계를 쌓고 적응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3학년 최윤선 선생님은 “오는 7월에는 체육대회도 열고 함께 땀을 흘리며 더 친해지는 자리를 가져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3일 오전 9시. 최인옥 교장은 ‘마지막 어린이날’ 조회 방송을 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서다. 이옥경 교감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학생 수가 줄수록 수월한 측면도 있겠지만 학교의 존속 자체가 문제가 될 정도인 만큼 심각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뿐 아니라 맞벌이가 아니면 아이를 키우기 힘든 현실에 방과 후 학교 강사 문제도 있는 등 여러 요인이 겹치다 보니 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라며 아쉬워했다.

학교 통폐합의 파도는 인구가 적은 지역을 넘어 수도권까지 몰아닥쳤다. 지난 3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21~2023년 통폐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4개교, 2022년 27개교, 2023년 21개교 등 최근 3년간 72개 초·중·고교가 통폐합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를 포함해 수도권에서도 13곳이 통폐합됐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너무 급격히 변하는 가운데 물리적 공간으로서 고향이란 의미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며 “그나마 심리적 고향으로 인식되는 학교가 사라진다는 건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고향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경수초등학교 출신인 이서우(28)씨도 “추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학교 앞을 지나며 괜히 코흘리개 때가 생각나고 그랬는데 뭔가 휑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학교 근처에서 14년간 꽃집을 운영해온 김모(57)씨는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 이러다 학교가 없어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현실로 닥칠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잊혀진 고향처럼, 경수초등학교라는 이름은 이제 졸업 앨범과 졸업장에 박제된 채 남게 됐다. 하지만 지금의 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면 또 다른 ‘경수초등학교’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고. 올해 졸업생 한 명이 통폐합 소식에 말을 남겼다. “앞으로도 선생님 엄청 뵙고 싶을 텐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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