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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분쟁 이해의 단초, 이스라엘 건국 전 팔레스타인 대봉기[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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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936  
오렌 케슬러 지음
정영은 옮김
위즈덤하우스

국제사회 최대 난제의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격돌의 근원은 무엇일까. 흔히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후세인-맥마흔 서한 교환(1915),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 벨푸어 선언(1917)을 가리킨다. 아랍인에게 오스만튀르크에 맞선 봉기를 부추기고, 영국‧프랑스가 전후 근동지역 분할 점령을 밀약하며, 전비를 지원한 유대인을 위해 국가건설을 지원하기로 한 모순된 약속이 혼란을 불렀다는 분석이다.

Protestors gather for a "May Day Workers Unite for Palestine" rally at Foley Square in New York City on May 1, 2024. (Photo by TIMOTHY A. CLARY / AFP)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Protestors gather for a "May Day Workers Unite for Palestine" rally at Foley Square in New York City on May 1, 2024. (Photo by TIMOTHY A. CLARY / AFP)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하지만 미국 태생으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분석가인 지은이는 오늘날 가자 등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투쟁의 원류를 1936~39년 팔레스타인 대봉기에서 찾는다. 아랍민족주의자 이즈 알 딘 알 카삼이 1935년 11월 경찰 살해 혐의 등으로 쫓기다 영국 위임통치 당국에 사살되자, 팔레스타인 지도층과 주민이 봉기해 유대 무장조직 하가나와 영국군을 상대로 3년에 걸쳐 무력투쟁을 벌였다. 신념을 위해 숨져간 알 카삼에 대한 복수, 독일에 나치가 집권한 1933년 이후 지속적 이주로 가나안 인구의 30%(약 40만)를 차지한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배경이었다. 오늘날 끈질긴 투쟁의 심리적‧사상적 배경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게릴라전과 공공시설 파괴, 총파업과 시위, 유대인 상품 불매와 유대인에 대한 불판매 운동 등으로 저항했으며 이러한 투쟁의 유산은 지금도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상징이 된 체크무늬 스카프인 케피예도 대봉기 당시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공격과 인질사태를 주도한 하마스의 ‘알 카삼 여단’에는 대봉기를 촉발한 인물의 이름이 붙어있다. 이스라엘을 상대로 로켓 공격과 식당‧버스 자폭‧자동차폭탄 테러를 벌여온 조직이다.

지은이는 1936년 대봉기를 이해해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분쟁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며, 유혈극을 멈출 해법도 이를 바탕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제: Palestine 1936: The Great Revolt and Roots of Middle East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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