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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사건’ 법리 논쟁…“임성근 지키기 압력” VS “박 대령, 권한 전부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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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채수근 해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와 대통령실·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자체 진상규명을 방해했다는 외압 의혹을 주요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채 상병의 사망 경위와 관련해선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까지 적용될 것인지, 외압 의혹과 관련해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는지가 주안점이다. 국민적 관심사는 외압 의혹 가운데 대통령실의 관여 여부이지만 법리적으로는 두 혐의가 모두 난해하기로 손에 꼽히는 만큼 쟁점이 복잡하다.

사실영역 화두는 대통령실…수사결과·사건회수 압박했나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야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을 단독 처리하고 있다. 이날 재석 의원 168명 전원이 특검법에 찬성했다. 연합뉴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야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을 단독 처리하고 있다. 이날 재석 의원 168명 전원이 특검법에 찬성했다. 연합뉴스.

만약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의 3분의 2가 이를 넘어 특검을 관철한다면, 특검은 법리 검토에 앞서 사실관계부터 먼저 정리해야 한다. 수사대상 가운데 상대적으로 무게추가 쏠린 건 특검 통과의 동력이 된 수사외압 의혹이다. 채상병이 사망한 지난해 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결과를 각각 대면보고 했다. 이날 박진희 국방부 군사보좌관의 의견에 따라 김 사령관은 국가안보실에도 수사결과를 보고했다.

사실 영역에서의 화두는 이튿날인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안보실과 비서실 회의를 주재하는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결과에 격노해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모종의 경로로 내렸느냐다. 박 대령 측에 따르면 이날 회의 직후 대통령실에서 이 전 장관에게 전화가 갔고, 이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는 전화를 했다. 이날 임성근 사단장의 직무배제 명령은 휴가처리로 바뀌었고, 수사결과 발표를 위한 해병대의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실 보고도 취소됐다.

이 전 장관의 해병대 수사기록 경찰 이첩 보류 지시에도 불구하고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 소속 부사관이 경북경찰청에 수사자료를 이첩하고 국방부가 나서 당일 이를 회수한 과정도 초점이다. 유 관리관은 이날 오후 국방부 검찰단장이 사건 회수를 위한 회의를 하기도 전에 경북경찰청 간부와 통화하고 사건 회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유 관리관과 통화를 했고, 그 과정에서 사건 회수 관련 지시가 내려갔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이종섭측, “사건처리, 이첩·회수 모두 장관 권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사실관계와 별개로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법리적 쟁점이 있다. 군사법원법 제2조 4항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은 범죄로 인해 군인 등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 예외적으로 해당 사건을 군사법원에 기소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론 법에 따라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이 재판권을 가지기 때문에 경찰이 재판에 넘기는 게 맞지만 예외 조항도 있는 셈이다.

이 전 장관 측은 이를 근거로 이첩 전 사건 내용에 관한 검토와 경찰 이첩·회수까지 국방부 장관에게 권한이 있고, 이 때문에 권한이 남용되거나 박 대령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령 측이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할 수 있는 수사를 다 마쳤고, 그 결과를 자체적으로 경찰에 이첩까지 완료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해된 권리행사가 없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은 미수범은 처벌하지 않는다.

“외형상 직무집행도 목적이 중요…독립성위반·면담강요 소지”

박정훈 전 수사단장(오른쪽 두 번째)과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맨 오른쪽)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박 대령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뉴시스.

박정훈 전 수사단장(오른쪽 두 번째)과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맨 오른쪽)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박 대령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뉴시스.

그러나 박 대령 측은 ‘직권남용이란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직무 행위의 목적, 그 행위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성이나 상당성이 있는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 충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20도15105)를 들어 대통령실 개입 여부나 국방부 조치의 목적 등까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직권행사의 주된 목적이 직무 본연의 수행에 있지 않고 본인 또는 제3자의 사적 이익 추구나 청탁 또는 불법목적 실현 등에 있는 경우’ 등을 직권남용의 요건으로 보고 있다.

박 대령 측은 윗선이 군사경찰직무법상 수사 독립성 조항을 어겼다고도 보고 있다. 이 법 시행령 7조에 따르면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경찰이 범죄의 정보수집·예방·제지 및 수사를 수행할 때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돼 있어서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이나 국방부가 박 대령에게 ‘임 전 사단장 지키기’ 등 부당한 이유를 들어 압박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혐의에 대한 자체적 판단은 경찰에 맡기고 사실관계만 이첩하자’는 취지의 단순 업무지시였는지 등이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 측은 “박 대령의 수사·이첩 활동은 모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각 군을 지휘·감독하는 국방부 장관 지휘 체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외부 압력이라는 프레임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장관 권한 밖이라 해도 ‘직권없이 남용없다’는 법리에 따라 더더욱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령 측은 “직권남용죄가 아니더라도,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이첩은 공무원의 비위 고발 의무와도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다”며 “기관장이 강요나 위력으로 이를 방해하면 특정범죄가중법상 면담강요죄가 되는데, 박 대령이 수사 이첩을 못 하게 한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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