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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병억의 마켓 나우

‘버터’보다 ‘총’이 먼저인 영국 집권 보수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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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영국은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2.5%까지 올릴 것이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달 23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유럽의 최전선이 된 폴란드를 방문했다. 수낵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도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다. 수낵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지속과 러시아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군비 증액을 강조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영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2.32%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군비 지출이 많은 상위 그룹에 속한다. 나토 회원국들은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과거 수차례 합의했지만, 올해도 회원국의 3분의 1은 2% 목표에 미달할 전망이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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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유럽 각국이 느끼고 있는 안보 위협과 이에 대응한 정책 조정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한정된 국가 예산을 ‘총’에 집중하다 보면 ‘버터’(복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둘의 상충 관계가 영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국 왕립응급의대(RCEM)는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응급실에서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지난해 하루 38명이 숨졌다고 분석했다. 응급실에서 5시간 넘게 기다릴 경우 사망 확률이 점차 높아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500만 명의 응급실 환자 가운데 무려 30% 정도가 12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집권 보수당은 건보에 정부 재정을 더 투입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도 선거를 의식해 근로자들이 납부하는 건강보험(NHS) 부담금을 잇달아 인하했고 NHS 투자도 줄였다. 원래 근로자들은 과세표준액의 12%를 건강보험 부담금으로 납부했는데 올해 1월부터 10%로 인하됐다. 지난달 6일부터 추가로 2% 포인트 더 내렸다. 이런 인하로 정부 세수는 100억 파운드, 약 15조원 줄어든다. 감세로 정부의 건보 지출은 올해 잉글랜드가 2.4%, 스코틀랜드는 0.75%, 웨일스는 0.7%씩 각각 감소한다.

금년에 영국에서는 총선이 치러진다. 지난 14년간 보수당 정부의 실정에 지친 시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강하다. 제1야당 노동당은 1년 넘게 정당 지지율에서 보수당보다 20% 포인트 앞선다. 보수당은 원래 경제와 안보에 유능하다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안보에서조차 노동당을 더 신뢰한다.

올해 영국 경제는 0.5% 성장이 예상돼 서방 선진 7개국(G7) 가운데 독일 다음으로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버터’를 소홀히 한 채 선거용 생색에만 매달리는 보수당이다. ‘총’보다 ‘버터’를 우선하는 유권자들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궁금하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