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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노병, 美 의사당서 최고 예우 받으며 이별

중앙일보

입력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미국 명예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를 안치 하고 조문하는 행사가 29일(현지시간) 미국 의사당 중앙홀에서 열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미국 명예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를 안치 하고 조문하는 행사가 29일(현지시간) 미국 의사당 중앙홀에서 열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한·미 양국에서 최고 등급 훈장을 받고 지난 8일 별세한 6·25전쟁 참전용사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조문 행사가 29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열렸다. 퍼켓 대령의 마지막 길은 미국 여야 지도자들이 초당적으로 함께 했다. 6·25 참전용사 가운데 미 의사당에서 조문 행사가 거행된 것은 고인이 유일하다. 미 언론은 "역대 대통령 등 큰 업적을 지닌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최고 예우였다"고 전했다.

29일(현지시간) 의장대가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명예훈장 등을 건 유골함과 삼각형으로 접힌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의사당 2층 중앙의 원형 홀(로툰다)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의장대가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명예훈장 등을 건 유골함과 삼각형으로 접힌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의사당 2층 중앙의 원형 홀(로툰다)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행사는 의사당 2층 중앙의 원형 홀인 '로툰다'에서 거행됐다. '의사당의 심장'이라 일컫는 곳으로 전·현직 대통령과 부통령, 상·하원 의원 및 군 지도자 등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사들이 사망했을 때 이들의 유해를 안치해 조문을 받도록 하는 장소로도 쓰인다.

미 의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통령 등 정부 고위 관리는 국가 안장(Lying in State), 민간인은 명예 안장(Lying in Honor)의 형태로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며 퍼켓 대령을 위해 예외적으로 최고의 예우를 갖췄음을 강조했다.

퍼켓 대령은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미 최고 훈장 격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도 받았다.

지난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에게 미 최고 훈장 격인 명예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에게 미 최고 훈장 격인 명예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조문 행사는 의장대가 명예훈장 등을 건 유골함과 삼각형으로 접힌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로툰다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에이미 클로버샤 미네소타주 상원의원, 한국계인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민주당 하원의원 등 의회 인사들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 데니스 맥도너 보훈부 장관 등 군과 바이든 행정부 인사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퍼켓 대령은 한반도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1950년 11월 북진 과정에서 중국과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205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중공군과 싸운 일화가 유명하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추도사에서 고인이 제8 레인저 중대 지휘관으로 싸웠던 이 전투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10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다"며 "그런데도 그는 임무를 완수하고 병사들을 명예롭게 이끌기 위해 힘과 결의, 용기를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 용기와 자기 희생은 후대 군인의 마음에 영원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존슨 하원의장은 퍼켓 대령의 모토가 '그곳에 있어라(Be there)'였다고 소개한 뒤 "상황이 어렵거나 춥고 비가 와도, 누군가 가슴을 향해 총을 쏴도, 음식이 없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거기에 있으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퍼켓 대령은 1950년 11월 추운 날 조국과 동료 병사들을 위해 거기에 있었다"며 "그는 국가의 부름(call of duty)을 넘어서는 전공을 세웠다"고 치켜세웠다.

이날 행사에선 4살 때 미국에 이민 온 한국계 군인 에스더 강 하사가 추모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미 육군 군악대 '퍼싱즈 오운' 소속인 강 하사는 이날 존슨 하원의장과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의 추모사가 끝난 뒤 군악대 연주에 맞춰 '인 더 가든'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강 하사는 "자원해 추모곡을 부르게 됐다"며 "한국계 미국인으로 뜻깊다"고 말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오찬에서 랠프 퍼켓(왼쪽) 예비역 육군 대령,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 고(故)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의 조카인 조셉 로페즈에게 태극 무공훈장 증서를 수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오찬에서 랠프 퍼켓(왼쪽) 예비역 육군 대령,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 고(故)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의 조카인 조셉 로페즈에게 태극 무공훈장 증서를 수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번 의회 조문 행사는 초당적 결의로 진행됐다. 미 의회는 지난 17일 퍼켓 예비역 대령의 의회 조문 행사를 위한 결의를 채택했다. 앞서 지난 12일 퍼켓 대령의 유해를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에 안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나왔다. 결의안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570만 명 이상의 미군을 기리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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