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기준되는 공시가격, 집주인들 되레 “올려달라”…전세사기가 낳은 기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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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공시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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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오히려 올려달라는 의견이 5000건 넘게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강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는 29일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산정한 전국 공동주택(1523만 가구)에 대한 공시가격을 30일 결정·공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률은 지난달 19일 발표한 공시가격(안)과 동일한 1.52%로 최종 결정됐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8일까지 소유자·이해관계인·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시가격(안)에 대한 의견을 접수했다. 총 6368건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81.1%인 5163건이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의견이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세부담도 커진다. 그런데도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건 정부가 지난해부터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강화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 세입자가 반환보증에 가입한 경우 계약 만료 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HUG가 이를 대신 돌려준다. HUG는 보증금을 대신 갚아주는 대신 주택을 경매 등을 통해 처분해 이를 회수하는데, 보증금이 주택의 시세보다 낮아야 손해를 입지 않는다. 그래서 시세 이하의 반환보증 가입 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126%룰 압박…공시가 줄면 전세보증 한도 줄어

정부는 2022년 말부터 빌라·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발생한 ‘전세사기’ 대책의 일환으로 반환보증 가입 한도를 줄였다. 보증 한도가 빌라의 시세를 웃도는 경우가 많아 사기에 악용된 탓이다.

기존에는 전세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50% 이내일 때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했지만 지난해부터 ‘공시가격의 140%, 전세가율 90%(=공시가격의 126%)’로 기준을 바꿨다.

이러면 보증보험의 한도가 줄어들게 되는데, 집주인들은 전세 계약을 새로 맺을 때 기존보다 전세보증금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 닥친다. 이 때 보증금 차액은 집주인이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공시가격까지 하락하면서 보증 한도가 더욱 줄게 된 것이다.

이에 빌라 임대인들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목소리를 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공시가격(안)에 의견을 제출한 빌라(다세대·연립) 소유주 3886명 중 96.2%(3740건)가 ‘공시가격 인상’을 요구했다. 국토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향 의견 접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과 임대보증금보증에 관한 제도 개선방안을 별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공시가격 변동 폭(1.52%)이 크지 않은 영향으로 의견 제출 건수는 지난해(8159건)보다 22% 줄었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역대 최대 폭인 19.08%(전국 평균) 상승했던 2021년(4만9601건)의 8분의 1 수준으로 의견 제출이 6년 만에 가장 적었다. 정부는 올해 제출된 의견 가운데 조사자인 한국부동산원의 자체 검토, 외부 심사 등을 거쳐 타당성이 인정되는 1217건(19.1%)의 공시가격을 조정했다.

공시가격이 결정되면서, 이에 연동되는 부동산 보유세 역시 전반적으로 지난해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서울 강남권 등 지난해보다 집값이 오른 단지는 보유세가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0.09% 올라 서울 평균(3.25%)을 웃돌았다.

공시가격에 이의가 있다면 다음 달 29일까지 이의신청서를 홈페이지와 국토부, 시·군·구청 민원실, 한국부동산원 관할 지사에 우편·팩스·방문 접수할 수 있다. 이의 신청된 내용에 대해선 재조사를 벌여 6월 27일까지 이의 신청자에게 결과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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