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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보화각, 간송의 초심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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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간송미술관에서 내달 1일부터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이 열린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노수현의 ‘추협고촌(秋峽孤村)’.

서울 간송미술관에서 내달 1일부터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이 열린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노수현의 ‘추협고촌(秋峽孤村)’.

1938년 중일전쟁의 파란 속에 간송 전형필(1906~1962)은 국내 1세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에게 서울 성북동 북단장에 지을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옛 이름)과 부속 가옥 설계를 의뢰했다. 언젠가 해방이 되면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등 각종 수장품을 공개 전시한다는 바람이었다. 반원형 돌출 구조에 비대칭 구성이 두드러진 보화각은 당대 최신 양식인 바우하우스풍 흰색 건물이었다.

꼼꼼한 기록광이었던 간송은 설계 의뢰시점부터 준공까지 공사 대금과 임금, 잡비 등 내역을 일종의 가계부인 『일기대장』에 남겼다. 박길룡건축사무소가 그린 설계도면도 받아서 보관했다. 별개로 남긴 지불명세서엔 보화각 등 설계감독비가 15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서울 시내 기왓집 한채값이 1000원 할 때다. 이들 문서는 보화각 수장고 한쪽에 잠들어 있다가 8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송미술관이 다음달 1일부터 여는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6월16일까지)을 통해서다.

29일 간송미술관은 언론공개회에서 “보화각 보수를 위해 모든 유물·자재를 신축 수장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유물이 상당수 나왔다”며 “간송 컬렉션의 초기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길룡의 설계도면은 오랫동안 접혀 있었고 뒷면은 누렇게 변했지만 보존처리를 거쳐 공개된 청사진 자체는 또렷했다.

간송 전형필이 남긴 『일기대장』. [뉴시스]

간송 전형필이 남긴 『일기대장』. [뉴시스]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내 첫 개인(사설)박물관으로 지어진 보화각은 2019년 12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국비·시비를 합쳐 총 23억원을 지원받은 데 힘입어 2022년 4월 ‘보화수보’(寶華修補)전 이후 1년 7개월 간 보수·복원 공사를 했다. 최신 전시·조명 설비와 편의시설을 보완했고 2층에 위치한 간송의 서재·온실도 과거 모습으로 살려냈다.

간송이 1938년 전에 구입한 서화류 수십점도 처음 선보인다. 각각 ‘남나비’와 ‘고접(高蝶)’이라고 불렸던 조선 후기의 유명한 나비 그림 화가 남계우(1811~1888)와 고진승(1822~?)의 작품이 2층 전시실에 나란히 놓였다. 기록으로만 전해진 고진승의 나비 그림이 실물로 발견된 건 처음이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작으로 당선된 노수현(1899~1978)의 ‘추협고촌(秋峽孤村)’도 처음 공개됐다.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재개관을 앞두고 간송 컬렉션 전반을 목록화하다가 확인한 것들”이라며 “그간 서지학 자료나 흑백 사진을 통해 알려진 작품의 실체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인터넷 사전예약제(회차당 100명)로 운영되며 입장은 무료다. 미술관 측은 간송 탄생 120주년인 2026년까지 국보 12점, 보물 30점이 포함된 컬렉션 총정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앞서 간송미술관은 3대째 승계 과정에서 운영 부담 등의 문제로 국보·보물 불상을 일부 처분해 파문을 불렀다. 2021년엔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정판 NFT(대체 불가 토큰)로 발행해 재정 난맥상에 대한 우려를 부르기도 했다.

전인건 관장은 “더는 컬렉션을 내놓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재확인하며 “할아버지(간송)가 지키고자 했던 ‘문화보국’을 현재 세대와 세태에 맞게 만들어가는 게 내 몫”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설립하는 간송미술관 분관에 관해선 “국비와 시비로 설립되는 미술관을 우리가 위탁운영하는, 일종의 구겐하임 빌바오 같은 모델”이라면서 “오는 9월쯤 첫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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