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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잡으려, 美 투자금 절반 돌려주는데...韓은 세액공제 15% [칩스법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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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시 세액공제나 보조금 혜택을 제공하는 ‘칩스법’으로 동아시아에 집중됐던 반도체 지형이 북미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도 바뀐 환경에 따라 새로운 산업 전략이 필요하지만, 관련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도전받고 있다고 본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생산 기반과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정의 무게 중심을 한국이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업계가 다음달 임시 국회 소집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이유다.

오는 2047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622조원을 투입하는 경기도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부지 전경. 연합뉴스

오는 2047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622조원을 투입하는 경기도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부지 전경. 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 종료되는 제21대 국회에는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디스플레이‧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관련해 여러 법안이 계류 중이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이번에 통과되지 못하면 22대 국회에서 발의 단계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 사이 경쟁업체가 각국 정부의 지원을 날개 삼아 도약하면 한국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총 480조원을 투입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엔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지원돼야 하는데, 현재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송전선로 등을 짓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전력망 특별법안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전력망확충위원회가 직접 해당 지역 주민과 갈등을 조정‧중재해 국가 첨단 산단에 필요한 송·변전 설비 건설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각 부처가 지원해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주민 수용성 문제를 보다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여야 이견이 큰 법안도 아닌데,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논의할 기회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연장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도체·2차전지·전기차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기업이 투자하면 세액의 15~25%를 돌려주는 법안으로 일몰을 연장하지 않으면 한국은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 지원 규모. 김주원 기자

미국 반도체 보조금 지원 규모. 김주원 기자

미국·일본 등은 전체 투자금의 40~50%를 직접 보조금으로 지원하며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데 비해 한국의 최대 25%(대·중견기업은 15%) 세액 공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첨단산업계는 직접 보조금 또는 공제 세액을 현금으로 주는 '직접 환급 세액공제(Direct Pay)'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반도체·2차전지 시설 투자액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투자세액공제는 ‘법인세 감면’ 방식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기업이 영업손실을 기록해 법인세를 못 낼 경우에는 ‘깎아줄 세금’이 없으니 세액공제 혜택도 못 받는다. 기업들이 “가장 힘들 때 정작 정부 지원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술 전쟁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최소한의 보호 장비는 착용할 수 있도록 이념 대립을 떠난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외에 산업계에선 전략산업지원기금 신설 및 기안자금 활용 방안을 담은 산업은행법 개정안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KDB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증액해 반도체 등 핵심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은행이 저금리 대출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산은의 자본금 한도를 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산은은 2014년 이후 10년째 자본금 한도 30조원으로 묶어둔 산은법을 개정해 자본금을 10조원 가량 더 늘리면 재정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면서 대출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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