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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권전문가 "北 정치범, 풍계리서 강제노동...피폭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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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미국 워싱턴 특파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캡처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미국 워싱턴 특파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캡처

“북한 인권은 이제 북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제 안보의 심각한 위협이 되는 전 세계적 문제입니다.”

그레그 스칼라튜(54)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이 자국민을 착취해 생산한 무기와 탄약이 이란을 통해 하마스ㆍ헤즈볼라에, 또 러시아에 들어가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와 핵ㆍ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사이에는 너무나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며 “김정은은 세계 민주주의 진영과 독재국가 진영 사이의 무질서 속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한국에서 유학했고 미국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한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011년 워싱턴 DC 소재 비정부 기구 HRNK의 사무총장을 맡은 이후 세계적인 북한 인권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북한 인권에 관한 한 미국 정부와 유엔도 스칼라튜 총장과 HRNK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지난 22일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23 국가별 인권 보고서’의 북한 관련 서술도 앞서 HRNK가 오보카타 토모야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한 ‘북한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ㆍUPR) 4차 보고서’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UPR 4차 보고서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인 선교사 등 북한에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도 돌려받아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더욱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역설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북한 여성 인권이 더욱 악화됐다”며 “구금시설에서 지속적인 강간,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에 젠더 학대, 성폭력 문화가 만연돼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김정은 체제를 두고서는 “영원한 독재정권은 없다”고 예견했다.

미국의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지난 8일 오보카타 토모야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한 ‘북한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ㆍUPR) 4차 보고서’ 표지. 보고서 내용은 미국 국무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2023 국가별 인권 보고서’ 북한 관련 부분에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사진 HRNK 홈페이지 화면 캡처

미국의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지난 8일 오보카타 토모야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한 ‘북한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ㆍUPR) 4차 보고서’ 표지. 보고서 내용은 미국 국무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2023 국가별 인권 보고서’ 북한 관련 부분에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사진 HRNK 홈페이지 화면 캡처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은.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이후 북한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북한)은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이란을 통해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ㆍ헤즈볼라(레바논 무장단체)ㆍ후티반군(예멘의 친이란 반군)에 전달하며, 러시아에 포탄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무기와 탄약은 북한이 자국민을 착취해 생산한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더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동유럽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중동 전선으로 전이돼 우리의 우방과 동맹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UPR 4차 보고서에서 일본인 납북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은 13명의 일본인이 북한에 피랍돼 일본으로 돌아간 5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납북자는 적어도 17명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망 경위도 믿기 어렵다. 대부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데 북한에서 교통사고가 그렇게 많나? 모든 사망진단서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같은 병원에서 발급됐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2021년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북전단 금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화상 중계를 통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21년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북전단 금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화상 중계를 통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납북자 문제 해결을 내세워 북ㆍ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 정치에서 납북자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해결을 요구하는 피해 가족들과 시민 단체의 요구가 강하다. 북ㆍ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일본은 그 가능성을 그냥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8월 한ㆍ미ㆍ일 3국 정상회의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ㆍ일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한국과 일본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기회다. 피랍된 한국인 어부ㆍ성직자ㆍ선교사 등도 많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을 돌려받아야 한다.”
북한의 정치범 구금시설 현황은.
“UPR 4차 보고서에서 밝혔지만 우리는 27개의 구금시설 위치를 확인했다. 외진 산악 지역, 북ㆍ중 국경 근처, 해안가 등에 전략적으로 배치돼 있다. 시설이 더 늘어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우리는 위성사진과 증언을 토대로 '진실의 퍼즐'을 맞춰 가는데, 코로나19 기간에 정확한 정보 확인 및 목격자 확보가 어려웠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미국 워싱턴 특파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캡처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미국 워싱턴 특파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캡처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 인권에 어떤 영향을 줬나.
“기혼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가장 큰 타격을 줬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길거리에서 내다 파는 게 불가능해졌고 끼니 해결이 힘들어졌다. 정치범 수용소나 구금시설에 갇힌 여성에 대한 고문, 강간, 강제 낙태, 성적 학대는 여전히 심각하며, 북한 사회 내부에 성적 학대 및 젠더 폭력 문화가 만연돼 있다. 문제를 제기할 곳도 없고 법규도 허술하다.”
UPR 4차 보고에서 풍계리 핵실험 시설과 정치범 수용소(16호 관리소)의 연결 경로 존재를 공식화했다.
“위성사진을 통해 풍계리 핵시설에서 동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16호 관리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감자들은 핵실험 시설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터널 뚫기나 핵시설 테스트 후 청소 작업에 보호장비 없이 동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지난해 10월 ‘북한 풍계리 핵실험 시설과 16호 관리소 사이 연결 통로의 증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1번 갱도와 16호 관리소 사이에 도로가 있으며 이는 정치범 수감자들이 핵실험장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발표했다. 사진 HRNK 보고서 캡처

미국의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지난해 10월 ‘북한 풍계리 핵실험 시설과 16호 관리소 사이 연결 통로의 증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1번 갱도와 16호 관리소 사이에 도로가 있으며 이는 정치범 수감자들이 핵실험장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발표했다. 사진 HRNK 보고서 캡처

HRNK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1번 갱도와 16호 관리소 사이를 잇는 5.2㎞ 도로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관리소 수감자들이 이 도로를 통해 핵실험 시설 건설과 유지 보수에 강제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HRNK는 “북한 정권은 정치범을 근절해야 할 ‘독초’로 본다”며 “이곳 수감자들은 방사능 오염 등에 노출되는 위험한 조건에서 혹독한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식량 배급도 빈약하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HRNK의 최근 역점 사업은.
“북한 체제는 국경 단속, 시장 단속, 정보 단속을 근간으로 한다. 우리는 최근 정보 단속에 주목한다. 북한 젊은이들은 미국 영화 ‘존윅’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요즘 남한 콘텐트를 보다 적발되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한국 드라마에 정치적 색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속 한국 사람들이 좋은 아파트에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커피를 마시며 사는 모습은 북한 당국자들에게 괜찮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해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비정부 기구 북한인권위원회(HRNK)에서 한ㆍ미 양국의 탈북민이 참여하는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가 열렸다. 오른쪽 두 번째가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비정부 기구 북한인권위원회(HRNK)에서 한ㆍ미 양국의 탈북민이 참여하는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가 열렸다. 오른쪽 두 번째가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연합뉴스

김정은 체제는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영원히 지속되는 독재 정권은 없다. 다만 불행하게도 현재 김정은은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수백만 개의 포탄을 팔고 있다. 돈을 벌면서 무기 실전 테스트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미국ㆍ한국ㆍ유럽연합ㆍ일본 등 민주주의 세계와 중국ㆍ러시아ㆍ이란ㆍ베네수엘라ㆍ쿠바 등 독재국가 사이의 균열이 깊어지는 현재의 무질서 속에서 김정은은 큰 이득을 보고 있다. 북한 정권의 변화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 북한 주민에게 인권, 외부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날까.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하든 북한 인권이 계속해서 강조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루마니아 출신으로 차우셰스쿠 공산 정권 붕괴 뒤인 1990년 루마니아인으로선 첫 한국 국비 유학생으로 10년간 서울에서 공부했다. 개인 숭배를 강요한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치하의 루마니아가 북한 독재 체제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2011년 8월 미국의 HRNK 사무총장에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워싱턴 DC에 있는 HRNK는 다양한 연구ㆍ조사ㆍ저술 활동을 통해 북한 인권 개선에 힘쓰는 비정부 기구다.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미 의회에서 청문회 증인으로 자주 출석해 북한 인권 실상을 증언해 왔고 북한 정례인권검토(UPR) 보고서를 4년 6개월마다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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