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낙방 학생 둔 학부모는 이렇게…|분노와 외로움을 씻어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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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91학년도 전기대임시의 합격자 발표가 잇따르면서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일부 가정에서는 합격의 기쁨으로 축제분위기인 반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합격자의 가정에서는 허탈과 분노로 시름에 잠겨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느니,「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느니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낙방 생과 그 가족들의 귀에 이 같은「공자님 말씀」이 잘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낙방이 어차피 현실로 닥친 일인 이상 계속 슬픔을 되씹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낙방생=낙방 생들의 심정은▲자기자신에 대한 실망감▲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막연한 분노▲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치감▲장래에 대한 불안감등으로 뒤죽박죽인 상태다.
자기자신이 이대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평소에는 무심코 들어 넘겼던 말 한마디에도 불같이 화가 나는가 하면, 자기의 심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극도의 외로움에 젖어들기도 한다.
이 같은 상태는 보통 10일정도 지나면 많이 가라앉게 되지만 이 기간이 훨씬 지나도록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자살기도 등 극한 행위가 나타날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낙방생의 학부모도 처신이 무척 어렵다. 우선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기가 힘든데다 자녀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의 박재황 상담위원(37·서강대강사)는『낙방생의 학부모는 한 걸음 앞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린 뒤 자녀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며『이 과정에서는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박 위원은 자녀에게 화를 내거나 빈정거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대하며 자녀의 격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차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하도록 권한다.
낙방직후『영국의 처칠 수상을 봐라…』『같이 외식하러 나가자』는 식으로 섣불리 위로하려들면 자녀들이「쇼하고 있구나」하고 역겨워하기 쉽고, 일체 모르는 척 내팽개쳐 두면 「나를 버리는구나」하고 비통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해 입시에서 아들이 낙방했던 김영남씨(45·주부·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대입낙방경험이 있는 대학생 조카, 같이 낙방한 친구 등을 불러 얘기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더니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눈치였다』며『5일쯤 지나니까 아들이「엄마, 이제 어떡하지」 라고 막힌 말문을 트더라』고 말했다.
◇진로결정=감정이 수습되고 나면 학부모·자녀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입시에서의 「패인」을 분석한 뒤 재수냐, 후기대 또는 전문대 진학이냐, 취업교육을 받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본인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재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떨어졌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후기대 또는 전문대에 도전해야 하며, 대학진학이 애당초 무리한 욕심이었다고 생각되면 취업교육을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때 학부모가 명심해야할 점은 대학진학만이 인생의 절대적인 길이 아니며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위가 최근 입시시즌을 맞아 펴낸『길은 열려 있습니다, 대학만을 고집할 것인가』라는 책자에 보면 고졸이하의 학력만으로도 자기분야에서 대졸자 이상으로 성공한 각계각층인사 24명의 성공담이 수록되어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숱한 좌절과 방황 끝에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분야를 발견한 뒤부터는 한눈팔지 않고 죽기살기로 한 우물을 팠다는 공통점이었다. 이 같은 점을 충분히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
서울YMCA등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낙방생을 위한 상담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용해볼 만하다.
후기대 임시가 끝날 때쯤 개설되는 상담교실은 낙방생에게 주는 각계각층 인사들의 격려와 충고강연, 진로지도 안내책자 배부, 적성검사 및 집단상담 등의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반드시 원하는 대학에 재도전해야겠다는 학생의 경우 바로 재수를 하느냐, 후기대 또는 전문대에 응시 합격해 적을 걸어놓고 재수를 하느냐로 고민하는 수가 많다.
입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위권 성적으로 의지가 굳센 학생들은 바로 재수하는 것이 좋고, 중하위권 성적으로 주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학생들은 적을 걸어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으므로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취업전선으로 뛰어 들겠다는 학생들은 취업교육 기관을 잘 선정해야 한다.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 산하에는 중앙직업훈련원·정수직업훈련원 등 37개 직업훈련원이 있는데 대부분 1∼2월중 원서를 접수한다. 이곳에서 실시하는 각종 훈련프로그램에서 1년 또는 2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 1급 또는 2급 기능사 자격증을 무난히 획득할 수 있다.
이밖에도 1백여 기업체가 청소년을 위해 실시하는 기업 내 훈련기관, 사회복지법인들이 하는 인정훈련기관과 일반 사설학원 등 배움의 기회는 많다.
직업인이 된 후에도 서울산업대 등 일반대로의 학사편입이 가능한 개방대학과 방송통신대 등이 있고「독학에 의한 학위취득제도」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본인이 하기에 따라 대학졸업장은 얼마든지 따낼 수 있을 것이다.<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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