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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할말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그게 상급자 역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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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호 06면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도서관 계단식 열람석에 앉아있다. 그는 매주 목~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책읽는 서울광장’을 기획했다. 김상선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도서관 계단식 열람석에 앉아있다. 그는 매주 목~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책읽는 서울광장’을 기획했다. 김상선 기자

당초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난 건 서울이 ‘시끌벅적’해서였다. 기후동행카드 이용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공공앱 ‘손목닥터9988’ 가입자도 77만 명을 넘어섰다. 48년 만에 창단한 공공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이 첫 공연(26일)을 앞두고 있고 히딩크 전 감독이 서울시향 해외홍보대사를 자처했다. 동행·매력이란 그의 비전이 낳은 변화다.

4·10 총선에서 그가 속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에 그에게 총선 민의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총선 전후로 두 차례 만났다. 평소 정치적 발언을 삼가던 그가 16일엔 큰 걱정을 내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여러 일로 지지층을 축소했다”라거나 “정책 전달력이 약했다”고 진단하며 “어떤 참모라도 할 말을 부담 없이 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선거 전략 부재도 지적했다.

총선 민심 어떻게 보나.
“매서운 질책이었다. 전문가들도 지지층 축소를 자초한 (여러) 측면을 지적하더라. 이념 다툼은 야당의 몫인데, 미래지향적인 정책 펼쳐야 하는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예를 들어 홍범도 장군 논란 같은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동의하기 어렵다. 저도 무슨 실익이 있나 했다. (대통령도) 대통령 리더십이 그렇게 비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일로 승부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비치면서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고 선거 결과로 민심이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국·일본처럼 ‘사회적 고립 전담부서’ 설치

윤 대통령의 경우 이념 외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사실 (정책 주도와 관리에서) 디테일에 좀 약한 것 같다. 똑같은 정책을 펼쳐도 앞뒤를 가다듬는 프로세스 관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동시에) R&D 예산이 굉장히 누수가 심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기 시작해 한 번 정도는 경고해야겠다는 인식도 한다. 엄중히 조사해 이런 일이 만연하지 않도록 메스를 대겠다고 하고 R&D 예산을 삭감했다면 국민도 박수쳤을 것이다. 그 충정은 다 어디로 가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몰라서 삭감한 대통령이 돼 있는 거다. 담당 공무원부터 참모까지 프로세스 관리를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통령의) 본심이 전달 안 되면서 불통 이미지까지 만들어진 거다. 그분의 리더십 스타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어떤 참모라도 하고 싶은 말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는 꼭 필요하다. 많이 알려진 게 앞에 가면 얼어붙는다고 하지 않나. 누구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상급자의 책임이다. R&D 예산 논란도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누구라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토론을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국무회의엔 오 시장도 있었다.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장에선 절절하게 들었다. (공개 발언 이후) 국무회의 끝부분에 공무원과 참모들에게 우리가 반성할 점이 무엇인지 각별히 당부하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뜨거운 가슴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녹여내자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총선 성과에 대해 여권 내에서 논쟁이 있다.
“애썼고 고군분투했다. 대안 없는 상태에서 차출됐고 본인도 이 국면에서 등장을 원치 않았을 텐데 등판했다. 자기희생이다. 선거전략 측면에선 상대방의 프레임에 말려 들어간 측면이 있다. 정권 심판론은 당연히 등장하는 과거지향적 프레임인데 586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음으로써 스스로 그 프레임으로 들어갔다. 전략의 부재다. 집권세력은 미래를 얘기하는 게 맞다. 약자동행도 얘기했으면 했다. ‘경제가 발전하면 뭐하냐, 나한테 오는 혜택이 없는데’라는 국민이 많다. 이들에게도 집권당으로서 메시지를 분명히 줘야 했는데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양쪽이 서로 심판론 하다가 끝났다. 선거 전략으론 썩 상책은 아니었다.”
오 시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이 늘었다.
“지자체장이 중앙정부나 중앙정치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여기(시장)가 정치가 아닌 일하는 자리란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세 마디 할 거 한마디 하고 열 마디 할 거 한마디 한다. 저 역시 책임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비판만 할 수 없다. 일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시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1일 서울시향 홍보대사로 위촉된 히딩크(오른쪽)와 함께 한 오 시장. [사진 서울시]

지난 1일 서울시향 홍보대사로 위촉된 히딩크(오른쪽)와 함께 한 오 시장. [사진 서울시]

그에게 “그래도 여의도에선 연락이 많이 오지 않나”라고 했더니 “다 (서울시) 지원 사업 때문”이라고 했다. 대화 주제를 서울시로 옮기자 그가 분명한 언어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승만기념관은 송현동에 짓나.
“건립추진위원회가 절실하게 원해서 유력하게 검토 중인 건 맞다. 서울시만의 문제는 아니고 일의 성격상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매력도시’를 내세워서인지 부쩍 문화를 강조한다.
“10년 전에는 문화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컬처노믹스’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제 문화 자체가 삶의 목적인 것 같다. 요즘엔 ‘펀 시티’라는 말을 한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퀄리티 라이프’를 즐기는 시민이 많아지려면 문화예술이 일상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동행카드를 문화의 발이 되게 하려고 각종 문화시설 할인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서울시 발레단 창단식에선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약자와의 동행에 꽂혀있다 보니 그렇다. 우리 발레는 상류층만 즐긴다. 문화예술이 특정계층 전유물이 되면 곤란하다. 시립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문턱을 낮춰줬으면 한다.”

오 시장은 변호사 시절 국립발레단 공연에 출연한 적 있는데 요즘엔 성악 레슨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 ‘투란도트’에서 테너 이용훈에 반해 ‘네순 도르마’를 배우고 있다. 마지막 ‘빈체~로~’ 고음처리가 안 돼서 죽을 둥 살 둥 한다”며 웃었다.

그간 우리 문화 현실도 많이 달라졌다.
“런던에 있을 때 젊은이들이 ‘강남스타일’을 부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 한류의 차원이 달라지는 걸 보며 책임과 의무를 느꼈다. 발레단 창단이나 시향 업그레이드도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투자 차원이다. 전통문화가 스며들도록 조선팝 공연, 국악관현악축제도 시작했다. 지난해 뉴욕에서 성공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마치 K팝 칼군무의 원형으로 보일 텐데, 한국 문화예술이 전통에서 현대로 이르는 맥락적 해석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 거다. 한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런 문화적 잠재력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해석되게 하는 게 행정의 역할이다.”

성악 레슨받는데 고음 안돼서 죽을둥살둥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는 최근 ‘매력’이란 비전을 ‘건강도시’ ‘정원도시’로 확장하고 있다. 정원도시는 누구라도 10분에 도달할 수 있게 3년 내 미니정원 1007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투리땅이라도 끌어모으겠다”고 말한다. 과거 오페라하우스를 두려던 노들섬 계획은 달라졌다. 그는 “오페라하우스는 한강 한가운데 들어가기엔 좀 과했다. 전임 시장의 시설물을 놔둔 상태에서 친환경적이면서 즐길만한 공간으로 수정보완해 가겠다”고 했다.

‘건강도시’와 관련한 오 시장의 설명은 이렇다. “심신이 건강해야 행복도 따라오고 건강보험공단 예산도 절약된다(웃음). 어떻게 하면 시민이 스스로 재미 삼아 운동하게 할지, 아이디어를 짜고 있다. 매력도시란 게 다 연결된 거다. 도시가 매력 있어야 돌아다니며 운동할 것 아니냐. 기후동행카드부터 손목닥터9988, 정원도시, 둘레길 사업 등 최근 일련의 정책들에 시민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자는 도시의 비전 체계가 작동하고 있고,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오 시장은 아울러 서울시에 사회적 고립 전담부서(돌봄·고독정책관)를 설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영국의 ‘고독부’, 일본의 ‘고독고립 대책 담당 대신’과 유사한 것이다. 그는 “동네에 자원봉사 모임이나 문화동아리, 건강관리 스포츠 모임 등을 만들어드리는 거다. 현대인은 관계의 설정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니, 모임에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대선보다 서울시장 5선에 관심 있다고 한 적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반반이다. 선출직은 국민의 부름에 늘 응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에 깊이 빠져있다. 오세훈 때문에 서울이 살만한 곳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실제로 한강 르네상스로 만든 산책길이나 산자락에 만든 둘레길이 없었으면 코로나 때 어쩔 뻔했나. 일을 잘하면 다음 스케줄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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