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필리핀 손잡아, 촘촘해진 대중국 포위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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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호 01면

미·일·필리핀 첫 정상회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4·10 총선 이후 한국 정치가 미지의 경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4·10 총선 이후 한국 정치가 미지의 경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일본·필리핀이 11일(현지시간) 최초의 3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벌이는 공세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3국 해상훈련 강화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미국이 각각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 일본과 손잡고 또 하나의 대(對)중국 공동 전선 구축에 나선 모양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구축한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에 더해 기존의 오커스(AUKUS, 미·영·호주 3국 간 안보 동맹), 쿼드(Quad, 미·일·인도·호주 간 안보 협의체)에 이어 미·일·필 3국 안보 협력 틀까지 촘촘한 대 중국 전선이 구축됐다. 전통적인 대륙 세력 대 해양 세력 간 대결 구도에서 봐도 소(小)다자 협의체를 통한 ‘대(對)중국 격자형’(lattice-like) 포위망을 완성한다는 미국의 구상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3국 정상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공동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중국의 불법적 해양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고 밝혔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내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필리핀명 아융인) 인근에서는 지난 3월 필리핀 선박을 향해 중국 해안경비선이 물대포를 쏘는 등 위협적 태도를 보였다.

세 정상은 동중국해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평화적 관리를 훼손하려는 행동을 포함해 동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을 통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했다. 상황에 대한 우려 표명을 넘어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의 주어를 중국으로 명확히 규정,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3국 해안 경비대는 내년에 상호운용성 향상 및 해양 안보 증진을 위해 함께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해양 협력 강화를 위한 3국 해양 대화체도 창설하기로 했다. 선언문은 “미국은 올해 인도·태평양 합동 순찰 도중 필리핀과 일본 해안경비대원들이 미국 해안경비대 함정에 탑승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3국이 각자 경계 활동을 벌이는 데서 나아가 미국 함정에서 함께 해안 경비 활동에 나서는 건 해양에서의 대중 견제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군이 아닌 국토안보부 소속 해안 경비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수위 조절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주장은 기본 사실과 다르며 중국을 악의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했다.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일본과 필리핀을 겨냥해선 “바둑돌은 결국 버림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주중 일본대사관의 요코치 아키라 수석공사를 초치해 “일본이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과 미·일·필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에 부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데 대해 엄정한 교섭(항의)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해양경찰 함정을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에 파견해 순찰에 나섰다.

3국 정상 “동중국해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 강력 반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지난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 의회 합동 연설에서 박수 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지난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 의회 합동 연설에서 박수 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군 관련 한 소식통은 통화에서 “남중국해의 연안 경계 활동 등은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명확한 행위”라면서 “이를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 일본이 공동으로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국제) 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 일본이 미국, 필리핀과 함께 군사 작전에 준하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기여를 한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면서 “큰 틀에서 일본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파트너로 삼고 주변 동맹국을 포진시키는 동맹 구조의 변화를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국 정상은 또 “경제 강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압의 ‘주체’를 적시하진 않았지만,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3국은 인프라 투자와 관련해 “필리핀 수빅만, 클라크, 마닐라, 바탕가스를 잇는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 루손 회랑’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일대일로’ 대응책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3국은 루손 회랑을 통해 철도, 항만, 청정 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등 인프라 프로젝트 공동 투자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3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약’도 재확인했다. 3국 정상은 공동 선언문에서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전례 없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납치 문제를 포함한 인권 및 인도주의적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을 향해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탄도미사일 이전을 자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미 의회에서 34분 간 영어 연설을 했다. 그는 10여 차례의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과거 제국주의 야욕과 침략, 식민지 지배와 같은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연설에서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라며 ‘벚꽃 동맹’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군사 동향이 국제사회의 전체 평화와 안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없던 최대의 도전을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에 맞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일본의 역할과 지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 국빈방문을 통해 무기 공동개발,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연계 강화 등 사실상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서의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일은 지난 10일 정상회담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연설에서 “세계가 미국과 미국의 리더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미국이 모든 것을 도움 없이 혼자 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면서 일본의 역할도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가 됐다고도 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방위비 인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는 2027년까지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2%에 달하는 재원을 방위비 예산으로 확보해 필요한 경우 적의 기지를 공격하는 ‘반격 능력’에 쓸 수 있도록 한 자신의 성과를 미국 의회에서 강조한 셈이다. 아베 전 총리조차 이루지 못했던 사실상 전쟁이 가능한 반격 능력을 명기한 국가 안보문서의 개정과 방위비 인상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보다 훨씬 역사수정주의적 시각을 고수해온 아베 전 총리조차도 2015년 연설에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마음으로 전후를 시작했다. 우리의 행위가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시인했는데, 이보다도 훨씬 후퇴한 것이다. 당시 그는 과거사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고도 밝혔다.

과거사를 외면한 이번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은 여당의 총선 참패라는 국내 상황과도 맞물려 한·일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 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던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윤석열 정부 주도로 ‘제3자에 의한 변제’를 통해 해법을 제시한 게 1년 전이지만 진전이 원활치는 않다. 포스코 등 국내 민간 기업의 기여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배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의 기여는 지금껏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 해법 발표 후 일본 측에 ‘성의있는 호응’을 요구했던 윤석열 정부로서도 총선 참패 직후에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이 같은 의회 연설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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