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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 찢어진 부산 환자, 5시간 지나 울산서 수술…끝내 숨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부산에 사는 한 50대 급성 심장질환 환자가 부산 내에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5시간 후 울산으로 이동해 수술을 받았지만 6일 만에 사망했다. 유족에 따르면 119 구급대원이 부산 내 병원 15곳 정도에 이송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모두 ‘여력이 없다’며 거부했다.

11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 부산 동구 좌천동 한 주차장에서 50대 남성 A씨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근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A씨가 갑작스레 흉통을 느껴 집에 있던 가족들에게 연락했고, A씨 아내와 딸이 119에 신고했다.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A씨를 구급차에 태운 뒤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B종합병원을 비롯해 부산 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등이 모두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며 수용을 거절했다. 부산소방 관계자는 “15곳에 연락을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10곳 이상에 연락했고 그 과정을 보호자도 지켜봤다”고 말했다.

119 신고 45분여만인 오전 7시쯤 A씨는 어렵사리 부산 수영구의 C병원으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급성 대동맥박리’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동맥박리는 심장에서 몸 전체로 혈액을 보내는 대동맥이 찢어져 발생하는 질환으로,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한 달 이내 90% 이상이 사망한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했다. 결국 C병원에서 56㎞ 떨어진 울산 중구의 D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신고 후 5시간 가까이 지난 오전 10시 30분 D병원에 도착한 A씨는 총 10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A씨는 에크모(ECMO·체외산소공급 장치)까지 장착한 뒤 수술 후 3일째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끝내 심장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지난 1일 사망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A씨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도 나온 적 없었다. 다른 지병도 없고 흡연·음주도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생활습관도 건강했다고 한다.

A씨의 20대 딸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만약 부산 내 병원에 1시간 내에 도착해 수술을 받았더라면 건강했던 아빠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부산의 많은 대학병원 중에 아빠를 받아줄 의사가 한명도 없어서 울산까지 가서 수술할 수밖에 없던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A씨의 가족은 병원들이 이송을 거부한 배경에는 전공의 집단사직의 영향도 있다고 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정황을 밝혀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A씨 딸은 “보건복지상담센터에 신고했는데, ‘어떤 병원을 소송하겠느냐’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우리는 특정 병원을 소송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부에 대해 억울함을 표하고 싶었던 건데, 돌아오는 답변이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심뇌혈관 질환을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동아대병원)가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40분 만에 첫 번째 병원에 도착해서 정상적인 진단은 이뤄졌다. 수술을 빨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울산으로 이송한 것으로 1차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면서 “권역센터에서 진료가 불가능했는지, 전공의 공백에 따른 영향인지 등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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