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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필리핀에 순환배치 추진…중국 견제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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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10월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케보노’가 미국·일본·필리핀 연례 합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마닐라항에 정박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케보노’가 미국·일본·필리핀 연례 합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마닐라항에 정박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는 11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사상 첫 미국·일본·필리핀 3국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 억지를 위해 일본 자위대를 필리핀에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필리핀 정부가 밝혔다. 3국이 적극성을 보이는 가운데 최종 성사될 경우 이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 아닌 사실상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일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4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스 주미 필리핀대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필리핀은 자위대를 필리핀에 정기적으로 일시 파견하는 형태로 순환 배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로무알데스 대사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도 검토하고 있다”며 “양국 간 안보 협력을 ‘동맹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3국 해군 공동순찰 확정 단계”

바이든, 기시다, 마르코스(왼쪽부터 순서대로)

바이든, 기시다, 마르코스(왼쪽부터 순서대로)

3일 파이낸셜타임스(FT)도 로무알데스 대사가 “필리핀과 일본은 양국 병력이 상대국에서 훈련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 접근권 협정’ 서명에 근접했다”며 “양국이 병력을 상대국에 순환 배치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남중국해에서 3국 해군의 공동 순찰 합의에 접근했으며, 순찰 빈도와 장소 등 세부 내용을 최종 확정하는 단계”라고 소개했다.

현재 필리핀 헌법은 외국군의 영구 주둔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군도 순환 배치 방식으로 필리핀에 병력을 두고 있는데 일본도 같은 방식의 파병을 논의 중이란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일본 전문가 크리스토퍼 존스턴은 “필리핀 내 일본 병력의 존재는 중국의 행태에 대응해 다국적 안보체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안보 제공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두 가지 강력한 메시지를 중국에 보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움직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4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직결되는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일본은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포함한 폭넓은 분야에서 3국이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것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후 평화헌법을 채택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은 그동안 유엔 PKO 활동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1992년부터 캄보디아, 모잠비크, 동티모르, 아이티, 남수단 등에 PKO 활동의 일환으로 자위대를 파견해왔다.

전임 두테르테 정권과는 달리 친미 성향을 보이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2022년 취임 이후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압적 행태가 반복되자 미·일과의 안보 밀착 행보에 적극성을 보였다. 최근 들어선 중국 해경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는 사건이 발생해 중국·필리핀 간은 물론 미·중간의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또 일본과 필리핀은 지난해부터 양국 군의 상호 왕래를 원활하게 하는 협정을 맺기 위한 협상을 해왔고, 일본은 지난해 12월엔 필리핀에 첫 방공 레이더를 수출하는 등 방산 협력도 강화했다.

친미 마르코스, 중국 위협에 미·일 밀착

중국 해안경비대가 지난해 12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필리핀 해군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중국 해안경비대가 지난해 12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필리핀 해군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전직 외교 고위당국자는 “미국은 그동안 동맹국인 일본·필리핀·호주와 분담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구도를 강하게 희망해왔다”며 “이번 3국 정상회담은 ‘정상국가화’를 지향하는 기시다 정권과 중국의 압박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마르코스 정권이 이에 적극 호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일본 자위대의 필리핀 순환 배치가 성사될 경우 중국은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별도로 외교·안보 전문가 사이에선 “이는 역내 안보지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만큼 윤석열 정부 들어 미·일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온 한국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일본의 ‘정상국가화’ 움직임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한국으로선 이에 대한 입장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단 얘기다.

한편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3일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대담에서 “(정상회담 때) 미·일이 필수적인 군사·국방 장비를 공동 개발하고 잠재적으로 공동 생산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치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캠벨 부장관은 이날 일본과 어떤 무기를 공동 개발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이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합의 ‘필러(pillar)2’에 참여할 가능성과 관련해 “다음 주 정상회담에서 더 공개할 내용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커스 합의는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필러1’과 양자기술·인공지능(AI) 무기 등 8개 첨단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필러2’ 등 2개 축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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