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사관 폭격에 이란 "배후는 이스라엘" 보복 예고...'확전' 조마조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아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 간부가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에 이란 정부가 보복을 공언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후 고조된 중동 내 확전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현지매체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후 다마스쿠스 남서쪽 이란 대사관 옆의 영사관 건물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공개된 현장 사진에는 영사관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고, 주변 차량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파손된 모습 등이 보인다.

이란 프레스TV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미사일 총 6기를 영사관을 향해 발사했다. 아직 사망자 규모가 확실하지 않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와 장군 2명, 장교 4명 등 최소 7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자헤디 사령관은 시리아·레바논에서 이란의 비밀 군사작전을 지휘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아직 이번 폭격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미국도 공습 사실을 알고 있고, 살펴보는 중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다만 NYT는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고위인사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정부는 영사관 건물이 이란 혁명수비대의 전초기지이며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다.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오가는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다.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오가는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이란은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2일 성명에서 “혐오스러운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며 “이 사악한 정권을 우리 용감한 사람들의 손으로 징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이 비인도적 공격을 규탄한다”며 “이 비겁한 범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침략자에 대한 대응과 처벌의 방식은 추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UN) 주재 이란 대표부는 "침략적인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은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란은 국제법과 유엔 헌장에 따라 그러한 비난을 받을 만한 행위에 단호한 대응을 취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의 "엄청난 국제법 위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소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는 미국도 비난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번 공습과 관련해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의 미국 이익대표부 직원을 초치했다. 또 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이란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있어, 주이란 스위스 대사관의 미국 이익대표부가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친이란 세력인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헤즈볼라 측은 이번 공격을 '범죄'라고 지칭하며 "처벌과 응징 없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헤즈볼라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을 비난하며 시리아 내 이란 연계 군사시설 등을 공격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이란과 매우 가깝고, 이 나라에 친이란 민병대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칫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NYT는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 수년간 은밀하게 전개된 '그림자 전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다"며 "중동 내 적대감이 고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확전을 원치 않는 이란은 그간 이스라엘과 직접 맞붙는 일을 꺼려왔으나, 영사관 건물에 대한 공격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과 이란이 오랫동안 중동 전역에서 암암리에 진행해 온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알자지라 보도 금지법 가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이스라엘의 공격 강도는 점점 높아지는 모습이다. AP통신에 따르면 1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구호 물품을 나눠주던 '월드센트럴키친(WCK)' 소속 외국인 구호 요원 7명이 숨졌다. 이들은 영국과 호주 등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불행히도 우리 군이 가자지구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공격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아랍권의 유력 방송사인 알자지라의 취재와 보도를 막는 법안도 가결 처리했다. 국가안보에 해를 끼치는 외국 언론사의 취재와 보도를 정부가 강제로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일명 '알자지라 법'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보도 내용이 안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할 경우 방송을 중단할 수 있다. 카타르 왕실의 지원으로 1996년 설립된 아랍권 최대 규모의 방송사인 알자지라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보도를 해와 표적이 됐다.

한편 이날 이란 영사관 공습의 여파로 국제유가가 지난해 10월 27일(85.54달러)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83.71달러를 기록했다. 전 거래일(3월 28일) 종가 대비 54센트(0.65%) 상승한 수치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