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대학 노린 산업스파이…정부 '연고포디유' 특별관리 추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KAIST는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KAIST는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이다. 연합뉴스

지난 2월15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A교수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A교수는 2017년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인 ‘천인계획’에 선발된 뒤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의 핵심 센서 기술을 중국 현지 대학 연구원 등에게 유출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그가 중국으로부터 챙긴 돈은 15억3000만원가량에 달한다.

이처럼 대학이 산업기술을 유출하는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정부가 전국의 주요 대학들을 특별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주요 대학 전체를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국가핵심기술이란,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기술로 정부가 지정해 고시한다.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은 보호구역을 설정해 출입을 통제하거나 출입 시 휴대품 검사를 하는 등 보안강화 조치를 해야 한다. 산업부의 실태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대학은 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보안 체계가 부실하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정부 방침을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부 장관 직권으로 대학 등이 정부에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 신청을 하게 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대학이 자발적으로 신청하지 않는 한 정부가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으로 지정할 길이 없는데,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연세대와 고려대, 포항공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는 유명 대학 대부분이 관련 기관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다만 KAIST는 A교수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2021년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 신청을 해 지정받은 상태다. KAIST 관계자는 “관련 기관으로 지정되자 많은 교수가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받는다’며 반발했지만, 최근엔 ‘기술 유출 범죄로부터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는 우호적 여론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광주과학기술원(GIST)도 관련 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서울대·KAIST·GIST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 신청을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연구 활동 과정에서 정부 간섭이 늘어나는 반면, 경제적 지원 등의 혜택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귀찮은 일만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대학가의 중론이다.

그러나 정부는 관리망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가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학과 기업 등을 통한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2019년 14건에서 지난해 역대 최다인 23건으로 증가했다. 이 중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된 범죄는 5건에 달한다. 대학·연구소에서 벌어진 기술유출만 따로 보면 5년간 8건이었고, 이 가운데 3건이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산업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관리 강화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대학의 일부 연구자는 기술 유출 대가로 해외 국가로부터 받는 대규모 자금이 끊기는 걸 우려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 신청을 꺼리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반면 정부 움직임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을 지낸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현행 법체계에서도 충분히 기술유출 범죄를 처벌할 수 있다”며 “정부 관리를 더 강화하는 건 과도한 규제로, 규제가 집중되는 산업기술에 대한 연구 공동화(空洞化) 현상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관리망이 헐거운 비핵심기술 연구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 결국 국익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