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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K기술 유출 실형 9.9%뿐…"대부분 초범, 근데 초범이라 감경" [구멍 뚫린 K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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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장과 센터 소속 수사관. 우상조 기자

서울시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장과 센터 소속 수사관. 우상조 기자

“첨단기술 유출·탈취는 점점 불법에서 합법을 가장한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대응과 수사가 어려운데, 재판 단계까지 가도 정작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A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임무 특성상 익명으로 진행)에서 “경제안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는 기술 경쟁 패권에서 도태되는 만큼 첨단기술 보호는 국익 수호를 위한 국가 차원의 임무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3년 10월 국가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해 출범한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았다. 센터가 20년간 적발한 산업기술 국외유출 사례는 500건을 훨씬 넘지만, 이 중 검찰·경찰과 협력해 재판에 넘긴 사건은 약 5분의 1인 117건(피해액 26조원 추산)이다. 그만큼 ‘산업스파이’ 범죄를 수사를 통해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117건 중엔 ‘핵심 기술’로 분류된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이 유출되는 사례 역시 36건으로 전체 국외 유출 범죄 중 첨단 기술 비중은 2017년 12.5%에서 2020년 52.9%, 2021년 45.4% 등 부쩍 늘었다.

A 센터장은 “기술 탈취의 핵심은 ‘브레인’에 해당하는 고급인력 빼가기인데, 핵심 인력을 영입하는 방법이 과거보다 훨씬 교묘하고 은밀해졌다”며 “최근엔 M&A(인수합병)를 통해 첨단기술을 가진 기업을 통째로 흡수하거나, 직원을 몰래 빼 와 R&D(연구개발) 센터로 위장한 회사에 이직시키곤 한다”고 말했다. 이하 A 센터장과 일문일답.

M&A 등 ‘합법’ 가장한 기술탈취…입증도 처벌도 어렵다 

지난 20년간 기술 탈취 범죄가 어떻게 진화해 왔나.
센터 출범 초기만 해도 은밀하게 반입한 카드형 USB나 하드디스크 바꿔치기 등의 형태였다. 하지만 2004년 중국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합병처럼 기업 자체를 통째로 흡수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인력 빼가기 역시 전직(轉職) 금지를 피하기 위해 위장업체를 설립해 스카우트하는 등 합법적 방식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술탈취 시도가 교묘해지는 만큼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할 텐데.
20년 전엔 조직도, 인력도 없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2003년 미국 국가방첩센터를 벤치마킹해 센터를 설립했다. 그간 500여건의 사건을 적발해 처리하며 기술 유출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는 기법을 선진화하고 검·경과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 유관기관 및 민간과의 협조 체계를 강화했다.
산업기밀 보호 과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합법적 형태로 기술탈취를 시도할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의 구분 자체가 어렵다. 인수합병의 경우 기술 탈취 목적이란 걸 입증하려면 인수 자본의 출처와 배후를 규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최근엔 첨단기술과 무관한 전혀 다른 위장회사로 이직한 이후 전직 금지 기간이 지나면 경쟁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이직’이 많다. 이 경우엔 위장회사와 경쟁사 간의 관계까지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한국을 방문해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했다. 과거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DMZ) 등 군사안보 최일선 현장을 방문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한국을 방문해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했다. 과거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DMZ) 등 군사안보 최일선 현장을 방문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기술 유출 범죄는 적발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입증은 더 어렵다. 재판에 넘긴다 해도 처벌 형량이 지나치게 낮고 범죄 수익은 환수하기 어렵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이 내려진 141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4건(9.9%)에 그쳤다. 반면 무죄는 52건(36.9%)이었고, 집행유예 선고 사건 역시 44건(31.2%)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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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에 대해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
국회에도 산업기술 유출 사범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 10여건이 계류돼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에 기술 유출 범죄는 징역 3년 이상,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양형의 절대 기준 자체가 그리 낮진 않다.
그럼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많은 이유는.
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에 비례해 양형 기준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선고형이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고 실형 선고 자체가 드물다는 점이다. 기술유출 범죄는 같은 기술을 두 번 유출할 수 없단 점에서 대부분 일회성이다. 초범이어도 기업에 미치는 피해는 막대한데, 재판에선 초범이란 이유만으로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지난 18일 대법원은 국가 핵심기술 국외 유출의 경우 최대 징역 18년형을 선고하고, 초범이라는 점을 집행유예 중요 참작사유에서 제외하는 양형 기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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