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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푸틴이 미웠다…'우람한 팔뚝' 복서 사진 꺼낸 속내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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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제기한 '우크라이나 파병론'의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자국 내에선 찬반이 나뉘어 파병 조건 등이 논의되고 있고, 러시아는 파병할 경우 핵 공격도 가할 수 있다는 등 날이 선 경고를 날리고 있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은 왜 미국 등 동맹국과의 상의도 없이 갑자기 파병론을 꺼내 들었을까.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아프리카의 '우라늄 부국' 니제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란 분석도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니제르는 반불(反佛) 정서가 커지면서 지난해 쿠데타와 대규모 시위로 프랑스와 관계를 끊고 친(親)러시아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프랑스 군인들이 지난해 12월 22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떠나기 위해 프랑스 군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반불 시위가 격화하자 니제르에 파견한 병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하고 이날 완료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군인들이 지난해 12월 22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떠나기 위해 프랑스 군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반불 시위가 격화하자 니제르에 파견한 병력을 모두 철수하기로 하고 이날 완료했다. AFP=연합뉴스

복서 된 마크롱, 푸틴과 싸움 준비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를 진행한 뒤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한 이후, "(러시아군이) 키이우·오데사까지 진격할 경우 개입할 수 있다"(3월 7일), "언젠가 러시아군에 맞서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지상 작전을 수행해야 할 것"(3월 16일) 등이라고 발언했다.

티에리 부르크하르 프랑스군 참모총장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기 위한 연합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 측은 프랑스가 실제 파병은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일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은 프랑스가 초기에 약 2000명 규모 병력을 보낼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프랑스 국방부는 허위 정보라고 반박했다. 지난 23일에는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가 우크라이나에 프랑스군을 배치하는 5가지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공식 사진 작가인 소아지그 드 라 므와소니에가 지난 19일 마크롱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권투하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두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므와소니에 인스타그램 캡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공식 사진 작가인 소아지그 드 라 므와소니에가 지난 19일 마크롱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권투하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두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므와소니에 인스타그램 캡처

이런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이 우람한 팔뚝으로 권투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사진이 지난 19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됐다. BBC는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훨씬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하기 시작한 뒤 이런 사진이 공개됐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상대할 준비를 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핵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대를 보낼 경우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표트르 톨스토이 러시아 하원 부의장은 지난 21일 프랑스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모스크바에서 파리까지 핵미사일이 날아가기까지는 2분 남짓이 걸린다"고 위협했다.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면서 확전을 원치 않는 나토 회원국인 미국·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은 파병 계획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푸틴 "마크롱, 니제르 때문에 화났다" 

다른 서방 국가의 비판까지 받는 데도 마크롱 대통령이 파병론을 완전히 거두지 않는 이유로 아프리카 동맹국 니제르를 러시아에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러시아 국영TV 인터뷰에서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다"면서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프랑스 꼬리를 밟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니제르는 지난해 7월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축출해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니제르에서 프랑스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등 반불 시위가 격화되자 프랑스는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 12월 니제르 주재 대사관을 무기한 폐쇄하고, 아프리카 사헬 지역 대테러 군사작전을 위해 니제르에 배치했던 병력 1500여명 철수를 완료했다. 프랑스는 앞서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 이어 니제르에서도 철군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니제르는 56년간(1904~60년) 프랑스에 식민지배를 받은 후에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등 프랑스의 간접 영향권에 있었다. 프랑스는 니제르에 경제·정치·군사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니제르의 빈곤 문제는 갈수록 악화했다. 이에 니제르에선 프랑스가 자국 이익을 위해 니제르 자원만 탐내며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아프리카 안보연구소(ISS)의 올루올레 오제왈레 연구원은 CNN에 "니제르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국을 착취하는 프랑스가 빈곤의 원인이라고 여기면서 반불 감정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니제르인들이 지난해 8월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반불 시위를 벌일 때 니제르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니제르인들이 지난해 8월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반불 시위를 벌일 때 니제르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가 떠나자 러시아가 니제르를 파고들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국방부는 니제르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군부 정권이 임명한 알리 마하만 라민 제인 니제르 총리도 지난 1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농업·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던 니제르는 서방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과 군사협력을 끝냈고, 지난 16일에는 니제르가 미국과의 군사 협정을 즉각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가디언은 "미국은 이곳의 군사기지를 잃으면 니제르가 러시아의 패권에 빠질 위험이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요크대의 레미 아데코야 정치학과 교수는 CNN에 "니제르 내에서 프랑스와 서방에 대항할 경쟁자로 러시아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아졌고, 이제 러시아가 거의 니제르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지정학적 주체가 됐다"고 분석했다.

우라늄 가격 오르자 '우크라 파병' 꺼냈다

프랑스가 니제르와 단교에 유독 속이 쓰린 건, 원자력발전(원전)의 주원료인 우라늄 때문이다. 니제르는 세계 7대 우라늄 생산 국가로, 프랑스의 전체 우라늄 수입 5분의 1이 니제르에서 나온다. 니제르는 지난해 7월 쿠데타 이후 프랑스에 대한 우라늄 수출을 금지했다. 프랑스 소유 우라늄 생산업체 오라노의 니제르에 있는 일부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전력의 70%를 원전에 기대고 있는 프랑스에는 적잖은 타격이 됐다. 프랑스 전역에는 총 18개의 원전에 56기의 각각 다른 규모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아울러 오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4기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우라늄 확보가 시급한 마크롱 대통령은 니제르 사태 직후 카자흐스탄(우라늄 생산량 1위)·우즈베키스탄(생산량 5위)을 방문하고, 몽골(매장량 10위) 대통령을 자국으로 초청했다.

그런데 올해 우라늄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세계 최대 우라늄 기업 중 하나인 카메코에 따르면 지난 1월 우라늄 가격(월말 업계 평균 기준)이 파운드(lb,약 0.45㎏)당 100.2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에는 95달러로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우라늄 가격이 100달러대가 된 건 2007년 이후 17년 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원전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미 하원은 지난해 12월 러시아산 우라늄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우라늄 생산량 7위 러시아의 보복에 따른 공급 우려로 가격은 더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프랑스는 니제르 우라늄을 독점 개발했던 시절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파병론까지 꺼내며 러시아와의 영향력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미군까지 철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프랑스가 니제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묘수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김동석 아프리카·중동연구부 교수는 "프랑스가 니제르 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당분간 우라늄에 대한 주요 권리는 러시아가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니제르도 경제적으로 서방의 원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프랑스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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