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너들이 '은행 빚 더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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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빚을 내는 대기업 오너들이 늘고 있다고 조선일보가 1일 보도했다. 경영권 방어, 계열 분리 등을 위해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아졌지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소유 재산은 많아도 막상 처분하려고 보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매각이 불가능한 주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기업 경영이 투명해져 자신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도 가지급금(假支給金) 등을 챙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부 오너 중엔 돈을 빌려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A시중은행의 경우 올해 10명이 넘는 오너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 갔다. 대부분 100억원 이하였지만, 일부는 200억원 이상의 거액을 빌리기도 했다고 이 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창업 2세들 사이에 독립 경영이 본격화한 SK그룹의 최신원(崔信源) SKC 회장과 최창원(崔昌源) SK케미칼 부사장은 올해 은행 빚이 크게 늘었다. 사실상 자신들이 책임을 지고 경영을 맡은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이 워낙 미미해 이를 늘리느라 적잖은 돈을 일시에 동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신원 회장은 올해 36차례에 걸쳐 SKC 지분 40만600주(1.17%)를 사들였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85억원에 달한다. 서울 논현동 집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지만 모자라는 돈은 은행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SK케미칼과 SK건설을 맡은 최창원 부사장도 지난 5월 말 퇴직자 등으로부터 SK건설 주식 191만주를 매입하는 데 90억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여기에 적잖은 증여세도 내야 하는 형편이다. 최 부사장 역시 20억원 전후의 돈을 은행에서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일단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월급과 배당금 등으로 갚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현대중공업과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치른 현대그룹 현정은(玄貞恩) 회장 역시 은행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분쟁의 초점이 된 현대상선 주식을 80만주 가까이 늘리느라 118억원 가량이 들었고, 지난 10월 현대택배 유상증자에서 실권(失權)이 난 주식 150만주 인수에도 120억원을 썼다. 현대상선 주식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해결했지만, 현대택배 실권주 인수에 들어간 돈의 상당 부분은 고스란히 개인적 은행 빚이 됐다.

은행들이 대기업 오너들에게 큰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이들이 소위 'VIP 고객'이기 때문이다. 기업 금융을 맡은 지점장들이 이들을 고객으로 잡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연줄을 동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출 금액 자체가 큰 데다 부실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은행이 100억원 미만 대출시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금리도 각 은행의 초우량 고객에 준해 최대한 싸게 책정된다. 다만 대출금액이 100억원을 넘어가면 주식을 담보로 잡을 때도 있다. 부동산담보 대출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은행 관계자들은 "과거처럼 회사에서 돈을 융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은행 빚을 내는 대기업 오너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경영권 방어나 지분 확보 등을 위해 목돈을 빌려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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