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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말고 임원 해고한다"…최악 경영난 아스피린 CEO의 실험

중앙일보

입력

바이엘 최고경영자(CEO) 빌 앤더슨. 로이터= 연합뉴스

바이엘 최고경영자(CEO) 빌 앤더슨. 로이터= 연합뉴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다국적 제약 및 화학 기업 바이엘은 지난해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맞았다. 창사 후 최악의 경영난을 맞고 있는 가운데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빌 앤더슨(58).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앤더슨에 대해 "지금까지의 경영학 교과서를 던져버리고 파격 실험을 하고 있다"고 주목했다. WSJ는 앤더슨의 실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임원을 몰아내고, 직원에게 힘을 줄 것."

앤더슨이 바이엘 CEO로 취임한 시기는 바이엘 역사상 최악의 위기다. 바이엘은 팬데믹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기대주로 꼽힌 신약, 아순덱시안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임상시험을 취소했다. 직후 바이엘의 주가 하락세가 가속화됐다. 임상 포기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1월 바이엘 주가는 2009년 이후 최저였다.

신약 임상 포기 결정을 내린 것도 앤더슨 CEO다. 그는 자신이 사령탑을 맡기 이전 개발이 진행된 이 신약이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사업을 바로 접었다. 당시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2018년까지 바이엘은 만성적인 연구‧개발(R&D) 투자 부족에 허덕였고, (신약 개발을 위한) 최첨단 화합물 개발에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2018년 바이엘 직원들이 당시 임원진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바이엘 임원진은 경영난을 이유로 1만2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려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바이엘 직원들이 당시 임원진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바이엘 임원진은 경영난을 이유로 1만2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려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앤더슨의 개혁은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WSJ에 따르면 바이엘엔 곧 칼바람이 불 예정이다. 임원직을 주로 해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바이엘은 이 대량 해고로 약 21억 달러(약 2조 8300억원)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WSJ는 추산했다. 임원, 즉 직함에 '장(長)' 자가 붙은 이들은 과감히 해고하고, 대신 이 자금을 R&D에 쏟아붓겠다는 게 앤더슨 식 개혁의 핵심이다. WSJ‧FT 보도를 종합하면 임원이 줄어든만큼 직원들은 간소화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권한과 책임을 얻게 된다.

앤더슨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뒤 같은 대학의 엘리트 경영대학원인 슬로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그는 FT에 R&D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현재 잘 나가는 제약기업인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R&D 지출액이 최하 수준으로, 당시만 해도 맥을 추지 못했다"며 "그러나 R&D 투자를 대폭 늘린 뒤, 이젠 전 세계 통틀어 내로라하는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앤더슨이 언급한 두 기업은 비만 치료 신약 등, 시대의 조류에 부합하는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2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연설 중인 빌 앤더슨 바이엘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연설 중인 빌 앤더슨 바이엘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앤더슨은 또 FT에 "바이엘에서 8~9년 전에 이미 벌어진 R&D역량 퇴화를 내가 갑자기 고칠 수는 없다"며 "바이엘의 현재 제약 관련 특허는 사실상 (특허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앤더슨은 또다른 의료 관련 대기업 로쉬에서 일하다 바이엘로 스카웃됐다.

단순히 임원을 해고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건 앤더슨도 잘 알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그가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은 유명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와의 협업인데, 맥킨지는 앤더슨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브랜딩했다고 한다. "다이내믹 공유 오너십." CEO와 소수의 임원이 아니라 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실제로 보상을 나누며 R&D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바이엘 전 세계 직원은 10만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어떻게 권한과 보상을 나눌 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WSJ는 "지금까지 현대 경영학 교과서에선 기업 내 위계질서를 강조해왔고, 이는 대부분 효과가 있기에 유지돼 왔다"며 "그러나 앤더슨은 이를 뒤흔드는 혁신을 꾀하고 있고, 이 시도가 성공하면 이는 경영학 교과서를 새로 쓰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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