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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오면 여행비 절반 준다" 70억 쏟는 강진군 초유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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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전남 강진군이 '강진 관광의 해' 선포식을 여는 장면, 이날 강진군은 '반값 강진' 프로젝트 개시를 선언했다. 중앙포토

1월 26일 전남 강진군이 '강진 관광의 해' 선포식을 여는 장면, 이날 강진군은 '반값 강진' 프로젝트 개시를 선언했다. 중앙포토

2024년 1분기 관광 부문 최고의 화제는 누가 뭐래도 푸바오다. 푸바오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여행 시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남도 끝자락의 갯마을 전남 강진군이다. 올해 강진은 ‘강진 관광의 해’를 맞아 ‘반값 가족여행 강진(반값 강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화제를 넘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인구 3만2000여 명에 불과한 강진군이 예산 70억원을 들여 강진 여행 경비의 절반을 돌려주고 있어서다.

반값 강진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관광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는 비난과 관광만이 살길인 지역 자치단체에서 묘수를 찾았다는 찬사가 엇갈린다. 이 모든 소란의 배후에 강진원(65) 강진군수가 있다. 지난해 9월 아이디어 단계부터 2차 사업이 개시된 오늘까지 숱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다스리고 전대미문의 프로젝트를 이끈 한 사람이다. 지난해 11월부터 week&은 강진원 군수를 세 차례 만나며 반값 강진의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강 군수와의 일문일답 형식으로 반값 강진을 설명한다.

강진원 강진군수. 반값 강진 프로젝트를 발의하고 추진한 주인공이다. 강진군청

강진원 강진군수. 반값 강진 프로젝트를 발의하고 추진한 주인공이다. 강진군청

반값 강진 사업은 무엇입니까.
이름에 ‘반값’이 들어가지만, 할인 이벤트가 아닙니다. 강진에서 돈을 쓰면 지출 금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 상품권을 지급합니다. 강진에서 돈이 더 돌게 하는 것이 반값 강진의 핵심입니다. 지출 확대이자 소비 확장입니다.  
할인 행사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잘못 알려졌군요.
중앙 정부가 지역관광 활성화한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내세우고 있는데, 할인 혜택이 많아지면 결국 국내여행 시장이 왜곡됩니다. 정가(定價)를 지불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확산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반값으로 강진 여행을 시켜주는 게 아닙니다. 싸구려 떨이 장사도 아닙니다. 2인 이상 가족이 최대 20만원어치 지역 상품권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그러려면 먼저 40만원을 써야 합니다. 반값 혜택도 결국 강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네, 가족만 이용할 수 있더군요. 신청 조건을 보니 복잡합니다. 
반값 강진에 신청하려면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우선 강진 주민은 안 됩니다.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입니다. 2인 이상 가족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가족 해체의 시대, 강진 여행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기를 바랐습니다. 한정된 재원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군비(郡費)만으로 70억원을 마련했습니다. 지원 자격에 제한이 없으면 70억원이 너무 빨리 소진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강진 인구가 3만2000여 명입니다. 재정자립도도 7.49%로 전국 최하위권이고요. 그런데 신규 사업에 예산 7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반대가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처음 석 달은 매일 군청 직원들과 회의했습니다. 직원들이 무척 난감해했습니다. 초유의 실험이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요. 예산도 재분배해야 했고, 성과를 장담할 수도 없었고요. 군의회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관광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함으로 일을 벌였습니다.
혜택이 너무 적은 건 아닐까요? 1인 최대 20만원도 아니고 2인 이상 가족에 20만원입니다.
액수가 너무 크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령 인근 지역에서 반값 강진으로 강진 농산물을 대량으로 살 수도 있겠지요. 2022년 국민여행조사에서 1인 하루 숙박여행 지출액이 12만4000원이었습니다. 2인 가족이면 24만8000원이겠지요.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20만원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값 강진 1차 행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성과가 있었습니까.
2월 9일부터 이달 10일까지 1차 사업 기간이 끝나고 18일부터 2차 사업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1차 사업 기간 총 신청 가족은 4515개이었습니다. 설 명절 연휴 관광객 현황을 보니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1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대 552% 증가한 곳도 있었습니다. 관광 비수기인 데다 경기 침체를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로 보입니다. 
이 정도면 훌륭한 성과 아닐까요? 만족하십니까? 
직원들은 만족해하더군요. 저는 조금 미흡해 보입니다. 참여자 거주 지역을 보니 서울·경기·인천 이용자가 20.7%이더군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높다지만, 저는 이 수치가 40%까지 올라가길 바랍니다. 2차 사업부터는 매출 30억원이 넘는 농협·축협 매장과 주유소, 그리고 유흥업소를 사업 대상지에서 뺐습니다. 여기에서 결제한 영수증은 반값 강진 혜택에서 제외됩니다.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더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강진 농박 브랜드 '푸소' 농가 표식. 강진에서 1주일 살기 사업은 국내 생활관광의 모범 사례다. 손민호 기자

강진 농박 브랜드 '푸소' 농가 표식. 강진에서 1주일 살기 사업은 국내 생활관광의 모범 사례다. 손민호 기자

혜택을 모바일 지역 상품권으로 주는 이유가 있을까요?
종이 상품권은 양도나 매매가 가능하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 전용 상품권으로 정했는데, 시장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들은 혜택을 못 받더라고요. 그게 제일 아쉽고 속상합니다. 
관광이 중요하다지만, 강진은 농업·어업 같은 1차 산업이 중심 아닌가요?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주민 반발이 예상됩니다. 
현재 강진의 3차 산업 종사자는 47%입니다. 1차 산업 종사자 42%보다 많습니다. 강진도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전환 중입니다. 3차 산업 종사자가 바로 자영업자이자 소상공인입니다. 그렇다고 1차 산업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요. 지역 상품권으로 강진 농수산물을 사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3차 산업을 활성화해 1차 산업까지 육성하려는 게 반값 강진의 목표입니다.
모바일 지역 상품권을 쓰려면 강진을 다시 방문해야 하나요?
강진을 다시 방문해주시면 좋지요. 그러나 사정이 안 되면 강진군이 운영하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 ‘초록믿음’에서 상품권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운영 관리가 소홀했었는데 올해 대폭 강화했습니다. 작년 연 매출이 1억원이었지만, 올해는 1차 사업 기간 월 매출이 1억원을 넘었습니다. 
70억원을 다 소진하면 예산을 추가할 건가요.
우선 냉정한 평가를 해야겠지요. 강진처럼 작은 고장에서 예산 70억원을 쓰는 건 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준비한 예산을 다 썼고, 그 예산으로 지역경제에서 분명한 효과가 발생했다면 기꺼이 추가 예산을 편성할 계획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30억원을 더 투입해 100억원을 맞출까 싶습니다. 
반값 강진 홍보 포스터. 강진군청

반값 강진 홍보 포스터. 강진군청

강진원 군수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반값 강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밀하게 준비된 사업이란 걸 알게 됐다. 혜택 한도를 20만원으로 정한 것도, 2차 사업에서 매출 30억원 이상 사업장을 제외한 것도 다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이뤄졌다.

솔직히 반값 강진은 중앙정부가 검토해야 하는 사업처럼 보였다. 중앙정부의 지역관광 활성화 사업의 태반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할인 행사여서다. 반값 강진은, 아직 성공 여부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중앙정부의 할인 이벤트보다는 진보한 관광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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