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곳 모은 ‘BTS 투어 지도’…대구 원숭이가 욕먹는 사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2.28

팔도 방탄 투어 지도

고백합니다. 오늘 일타강사 강의에는 적정 함량 이상의 사심이 들어 있습니다. ‘아재 아미’로서 방탄소년단(BTS)을 주제로 국내여행을 이야기합니다. 아미로서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이상, 오늘 강의에는 저널리즘에 입각한 논평 같은 건 없습니다. 애오라지 ‘방탄 오빠들’을 향한 찬양과 오빠들과 나눴던 추억만으로 가득합니다.

BTS가 당대의 아이콘인 건, 아미가 아니어도 절감합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네 여행 풍경이 바뀌었다면, 팔 할은 BTS 몫이라고 일타강사는 확신합니다. BTS와 BTS의 팬클럽 아미가 만들어낸 변화는 관광 부문에서도 두드러집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BTS가 창출한 경제 가치가 5조5600억원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BTS가 국내 관광산업에 미친 효과만 따져도 5조원은 거뜬히 넘을 듯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6, 7년 전 경기도 양주시 일영역의 사례입니다. 경기 북부 소도시의 늙은 간이역에 어느 날 전 세계 소녀들이 제 키만 한 여행 트렁크를 끌고 나타납니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달려온 아미들이었습니다. 기차도 서지 않는 간이역에서 소녀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저희끼리 깔깔대며 뛰어다녔습니다. 2017년 공개된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를 본 적 없는, ‘봄날’은커녕 BTS도 모르는 동네 어르신은 도무지 영문 모를 별일이었습니다.

기이한 일은 팔도 구석구석에서 일어났습니다. 강원도 강릉의 한갓진 해변에서도 수상한 자들이 목격되기 시작했습니다. 일군의 소녀들이 찾아와 백사장만 길게 이어진 해변의 어느 한 지점을 콕 짚더니 그 자리에서만 사진을 찍고 돌아가더랍니다. 지금처럼 버스정류장 세트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BTS는 이 해변에 버스정류장 세트를 지은 뒤 앨범 사진을 찍고 바로 철거했습니다. 그 흔적이라도 간직하겠다고 전 세계 아미들이 순례를 왔던 겁니다. 유사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 앞에서는 발레 동작을 흉내 내는 듯한 기묘한 자세로 사진 찍는 청춘들이 출현했고, 대구 어느 동물원의 원숭이는 일부러 찾아온 아미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습니다.

전국 지도를 펼쳐 보면 BTS 덕분에 하루아침에 국제 명소로 거듭난 장소가 100곳이 넘습니다. 특히 서울은 전 세계 아미가 동경하는 도시가 됐습니다. 2017년부터 6년간 BTS가 서울 관광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거니와, BTS 멤버가 연습생 시절부터 다녔던 길을 전 세계 아미가 순례길인 양 되밟고 있어서입니다. 서울뿐만이 아닙니다. 여행 좋아하는 리더 RM이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사진만 쫓아다녀도 전국 일주가 가능하지요. 이미 그렇게 RM 인증 투어를 다니는 아미도 많습니다.

더욱이 BTS는 출신 지역이 다양합니다. 저마다 고향에 애정이 각별하지요. BTS 초창기 노래 중에 ‘팔도강산’이 있습니다. 멤버가 돌아가며 제 고향을 자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대구 출신 슈가와 광주 출신 제이홉이 사투리로 랩 배틀을 하기도 합니다. ‘하모하모갱상도쥑인다아인교!! 아주라 마!! / 우리가 어디 남인교!!’ ’거시기 여러분 모두 안녕들 하셨지라 / 시방 뭐라고라? 흐미어찌아쓰까나’. 이런 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집니다.

방탄 투어를 나서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2023년부터 BTS 소속사가 무단으로 BTS 이미지를 활용하는 자치단체에 관련 시설물 철거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철거가 완료된 곳도 있지요. 그래도 아미에게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허접한 시설물보다 오빠들의 자취가 더 중요하니까요.

팔도 방탄 투어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전국 명소 중에서 25개를 추렸습니다. BTS 멤버가 7명이어서 아미에게도 ‘7’은 뜻깊은 숫자지만, ‘25’는 요즘의 아미들이 애타게 부르는 숫자입니다. 군 복무 중인 BTS 멤버들이 완전체로 무대에 돌아오는(돌아오기를 희망하는) 해가 2025년입니다. 전 세계 아미들이 “25년까지만 참자”며 하루하루를 버틴다지요. 그 갸륵한 뜻을 받들어 25곳만 뽑았습니다. 아울러 오늘 강의는 BTS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열혈 아미 여고생의 고강도 감수를 거쳤음을 밝힙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