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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만에 새꼬막 100kg...텃세 없는 '귀어인의 천국' 가보니 [바다로 간 회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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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2월 1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 딸린 섬 도리도. 백미리항에서 5.5㎞ 떨어진 무인도 앞바다에 4t급 어선이 닻을 내렸다. 칼바람을 맞으며 20여분 정도 기다리자 썰물이 지고 갯벌이 드러났다. 바다를 살펴보던 어민들은 갈퀴 등이 담긴 붉은색 고무 대야를 들고 갯벌로 향했다. ‘도리도 귀어(歸漁)인 공동체’ 회원들이었다. 이들이 갈퀴로 파는 곳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새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최재영(52) 위원장은 “2년 정도 자란 꼬막”이라며 “전남 보성군 벌교 꼬막보다 백미리 꼬막이 알도 굵고, 맛도 더 쫄깃하다”고 한참을 자랑했다. 이들이 들고 온 대야는 금세 새꼬막으로 가득했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앞에 있는 섬 도리도에서 캔 새꼬막들. 최모란 기자

경기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앞에 있는 섬 도리도에서 캔 새꼬막들. 최모란 기자

귀어인으로만 구성된 전국 유일의 공동체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는 백미리 귀어인이 모여 만든 자율관리어업공동체다. 자율관리어업공동체는 어민들끼리 자체적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현행 법령보다 강화한 금어기(禁漁期)나 금지 체장(어패류 등에 대한 크기 기준), 수산물 관리 기준 등의 자체 규약 등을 만들어 지킨다.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는 지난해 12월 화성시에서 승인을 받았다. 국내엔 1130여개(2023년 기준) 자율관리어업공동체가 있는데 이중 귀어인으로 구성된 건 도리도 공동체가 유일하다.

이들은 백미리 어촌계가 관리하는 마을 어장 2곳(50ha)에 투자하고 사용권을 얻어 조업하고 있다. 봄·여름·가을엔 주꾸미와 낙지, 바지락 등을 채취하고, 겨울철에는 주로 새꼬막을 잡는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백미리에 거주한다. 1년 차 새내기부터 8년 차 베테랑까지 총 25명이다. 이중 최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이 경기도 귀어학교 수료생이다. 최 위원장은 “젊은이가 도시로 가면서 고령화한 어촌을 살려보자는 마음에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도리도에서 새꼬막을 채취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도리도에서 새꼬막을 채취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회원들은 보통 4~5명이 팀을 이뤄서 작업한다. 이날 새꼬막 조업엔 최 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 나섰다.
그동안 국내산 새꼬막은 대부분 남해에서 채취됐지만 수온 등 바다 환경의 변화로 서해에서도 채취가 가능해졌다. 백미리 어촌계는 2016년부터 종패를 뿌리는 등 새꼬막 양식에 공을 들여왔다. 도리도 공동체 회원들은 마을 주민들이 배려로 새꼬막을 잡는다는 감사의 마음과 새꼬막 남획을 막기 위해 1인당 어획량을 하루 100㎏으로 제한하는 등 자체 규정을 만들어 조업하고 있다.

이들 중 수산물 채취 실력이 가장 뛰어난 실력자는 8년 전 귀어한 최중순(58·여)씨다. 갯벌에 나간 지 2시간도 안 됐는데 20㎏씩 담는 망 5개에 새꼬막을 가득 채웠다. 최씨는 “수원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2016년 귀어했다”며 “처음에는 어획량이 너무 적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주민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잡히는 곳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일지를 만들면서 조업했더니 실력이 금방 늘었다”고 말했다.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도리도에서 새꼬막을 채취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도리도에서 새꼬막을 채취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백미리는 경기도에서 귀어인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촌계원 112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귀어인이다. 어촌계원 평균 연령도 49세 정도로 젊은 편이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 하는 다른 어촌계와 달리 문턱이 낮춘 게 성공 비결이다. 백미리 어촌계는 특별한 조건 없이 화성시 서신면 또는 백미리에 거주하면 계원으로 받아준다.
최 위원장은 “어촌계 가입비도 없고, 어르신의 어촌 계원 자격을 젊은 귀어인에게 내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귀어한 어촌계원이 늘면서 2019년 416명이던 백미리 인구는 현재 430여명으로 증가했다.

어촌계원 절반 귀어인…"텃세도 없어"

이곳은 귀어인에 대한 ‘텃세’도 없다.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삼성반도체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3년 전 귀어한 한대성(49)씨는 “처음에 바닷일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현재는 많이 익숙해졌다”며 “이사 온 뒤 1년간은 이웃 주민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채취한 새꼬막을 크기 별로 선별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채취한 새꼬막을 크기 별로 선별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도리도 공동체는 어업 활동을 시작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소득이 높지 않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아직 시작 단계나 다름없어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다”라며 “수산물을 채취는 물론 양식도 해서 소득을 높이면서 백미리의 보물섬인 도리도를 정화하는 등 마을 발전에 도움을 주는 사업도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호연(60) 백미리 어촌계장은 “도리도 귀어인 공동체 조합원들이 아직 어촌에 적응하는 단계”라며“이들이 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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