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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으로 파헤친 이 그림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1호 25면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채호기 지음
난다

같은 것을 보아도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이 있고, 그 이상을 풍부하게 느끼고, 즐기고,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 시인 채호기는 후자에 속한다. 원, 선, 점 등의 도상을 오브제로 삼는 추상화가 이상남의 작품을 통해 그는 그림이 촉발하는 감각과 생각의 의미를 탐구해왔다.

그에 따르면 이상남의 세계는 ‘감응(感應)의 회화’다. 그림이 힘과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보는 이에게 그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대하도록 요구한다는 것. 그러면서 ‘매끄러움’ ‘두께’ ‘층’ ‘정교함과 뭉개짐’ 등의 주제어로 감응의 원천을 파헤친다.

시인은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표면을 위해 화가가 50~100번 이상 물감을 칠하고 갈아내는 노동이 지닌 ‘힘의 감응’에도 주목한다. 이 노동은 관람객에게도 전이된다는 점에서 이상남의 그림은 “작동하는 회화”다. 또 회화에서 멀어지면서 음악과 건축에 이르는 “미래의 표상”이기도 하다.

작품 분석 외에 시인과 화가가 나눈 대담의 기록을 꼼꼼하게 담았다. 미술가의 세계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가 시인이란 점이 흥미롭다. 책은 미술과 문학, 철학이 경계를 넘어 서로 감응할 때 예술은 더 ‘살아있고’ ‘새로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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