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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팔로어도 없는데…‘한줌단’으로 돈 버는 그들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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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팔로어 1000명 ‘나노 인플루언서’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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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널리고 널린 K랑은 좀 다른 거 아닌가?” 넷플릭스 시리즈 ‘셀레브리티’ 속 세계관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팔로어 옆에 붙는 M(million, 100만)과 K(kilo, 1000)는 엄연히 다른 계급이다. 팔로어 수가 곧 권력이자 돈인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M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류층이다. 그런데 요즘 M의 시장 지배력이 예전 같지 않다. “단순히 팔로어로 줄 세우는 게 정말 광고 효과가 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셀레브리티까진 이르지 못한 인플루언서, 즉 ‘나노 인플루언서’들이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1. 살림·육아·뷰티 하나만 ‘픽’…취향 저격 ‘이웃 같은 존재’ 

뷰티·패션부터 살림·육아까지, 동네 이웃 같은 이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줌단’(소규모 팬덤을 가진 집단) 팔로어들이 나노 인플루언서들의 무기라는데, 이들은 대체 왜 주목받고 있을까.

◆마이크로보다 작은 나노가 온다=여기 두 사람이 있다. 넓은 야외 광장 한가운데서 “여기 좀 보세요!” 외치는 A, 방 안에서 “여기 좀 보세요!” 외치는 B. 규모는 작을지언정 그 안에서 더 주목받는 건 B일 것이다. 나노·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시장이 형성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작지만 알차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나노·마이크로·미디엄·매크로·메가’를 나누는 기준은 팔로어 숫자다. 업계에서는 통상 팔로어 수 1000~1만명 미만인 인플루언서들을 나노로 분류한다. 요즘은 팔로어 수가 1000명만 넘어도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버가 운영하는 인플루언서·중소상공인(SME) 연결 플랫폼 ‘브랜드 커넥트’의 경우 블로거 기준 이웃 수 1000명만 넘어도 가입할 수 있다. 이 나노 인플루언서들은 좁지만 타깃이 명확한 분야에서, 팔로어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팔로어들에게 이들은 ‘셀럽’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멋진 이웃’에 가깝다.

나노 인플루언서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0~20대, 소위 ‘잘파’(z세대와 α세대를 합쳐 부르는 신조어)세대의 선택을 받으면서다. 이들은 SNS에서 인플루언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이자 자신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하는 세대다.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 나스미디어가 지난해 6월 공개한 ‘2023 상반기 미디어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잘파 세대의 63.8%가 장래희망으로 인플루언서를 꼽았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른 세대보다 SNS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잘파 세대의 취향은 아주 세분화돼 있는데, 나노 인플루언서들은 이 세분된 취향의 영역을 맞춤형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플루언서들의 주 무대인 ‘SNS 광고’는 이미 2021년 전통 강호인 ‘검색광고’를 추월해 점점 격차를 벌리고 있다. 글로벌 인플루언서 플랫폼 레뷰코퍼레이션은 지난해 ‘2023 대한민국 인플루언서 비즈니스 랜드스케이프’ 보고서에서 2016년 2조2000억원 수준에 그쳤던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 규모가 2023년 약 28조원을 웃돌았다고 추정했다.

2. 폰만 있으면 만드는 숏폼…셀럽 안 부러운 광고효과

◆나노 인플루언서의 3요소=업계에선 “인플루언서라면 최소 팔로어 1만은 돼야 한다”는 인식이 최근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 팔로어 수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순도(purity): 뷰티의 a to z를 다 알려주는 메가 ‘뷰티 인플루언서’와 기초 케어만 알려주는 나노 인플루언서가 있다면, 어느 쪽 팔로어의 순도가 더 높을까. 분야가 좁을수록 팔로어의 순도는 올라가는 편이다. 매크로를 이용해 좋아요를 누르는 가짜 계정(fake follower)이 적고, ‘맞팔 부탁드려요’와 같은 영혼 없는 댓글이 적을수록 순도가 높다고 본다. 인플루언서가 새로 올라오는 게시물을 팔로어가 클릭하고 광고 제품을 따라 살 확률도 높아진다. 작지만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셈이다. 인플루언서 데이터 마케팅 플랫폼 피처링의 장지훈 대표는 “최근엔 해당 인플루언서의 콘텐트를 보는 소비자들의 순도가 높은지, 낮은지가 누적 팔로어 수만큼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숏폼: 인프라도, 자본도 부족한 나노 인플루언서의 무기는 ‘숏폼’이다. 고가의 카메라나 편집 인력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어 허들이 낮아졌다. 인플루언서 패션 마케팅 플랫폼 스타일메이트 한상희 대표는 “소비자들도 인스타그램 피드 게시글보다 릴스를 더 많이 소비하고, 메타 등 플랫폼도 숏폼 노출을 높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세감: 업계에선 기업들이 마이크로, 나노 인플루언서를 원하는 이유로 ‘대세감 조성’을 꼽는다.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해당 브랜드가 대세라는 걸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때 소수의 메가 인플루언서에게 하는 것보다 나노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에게 협찬해 자주 눈에 띄게 하는 게 대세감 형성엔 유리하다는 것이다.

3. 광고주-인플루언서 매칭…중개 플랫폼도 쑥쑥 성장 

◆‘나노’들을 위한 비즈니스=나노·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성장에 따라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의 법칙’도 변하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요즘 커머스 플랫폼은 ‘커뮤니티 형성-플랫폼 체류-쇼핑’의 선순환을 통해 매출을 늘린다. 1단계인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게 나노·마이크로 인플루언서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는 지난해 3월 인플루언서들이 스타일을 공유할 수 있는 ‘코디’ 코너를 만들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대형 인플루언서는 나와 너무 다른 삶이라 생각해 실제 구매까지 잘 이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는 실제 구매까지 잘 연결된다”고 말했다. CJ올리브영도 지난해 10월 SNS와 유사한 기능인 ‘셔터’를 자사 앱에 도입했다. 피부톤이나 피부 타입이 동일한 이들을 검색해 해당 계정을 팔로어할 수 있게 했다. 회사 관계자는 “셔터 도입 다음 달에 올리브영 앱의 월간 활성이용자수(MAU)는 541만 명으로 전년 동월(362만 명) 대비 5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나노·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과 광고주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도 크고 있다. 플랫폼에 광고할 물품을 올리면 인플루언서들이 지원하고, 광고주들은 이를 보고 ‘핏’이 맞는 이들을 고르는 식이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레뷰’는 인플루언서 모집과 선정, 콘텐트 검수·관리, 보고·분석 마케팅 전 과정을 자동화한 게 특징이다.

◆이 시장의 미래=나노 인플루언서들이 뜨면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가라앉을까. 전문가들은 둘의 갈 길이 아예 다르다고 분석한다. 나노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특정 분야 상품의 구매 전환을 정확히 이끄는 역할이라면, 매크로 이상의 인플루언서들은 좀 더 브랜드 차원의 장기 기획에 투입되는 식이다.

나노 인플루언서의 범위도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책 『트렌드 코리아』시리즈 공동저자 중 한 명인 권정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마이크로 이하 규모 인플루언서 비즈니스는 주 타깃층인 잘파를 넘어 앞으로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 더 쪼개지고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보다 영향을 미치게 될 분야도, 세대도 한층 더 다양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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