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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안하던 김범수 변했다…주7일 카카오 나오자 생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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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복귀 넉달, 시동 걸린 ‘뉴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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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위기라는 말도 식상해진 요즘, 카카오그룹 내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간 자율경영이라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범수 창업자가 주 7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카카오를 ‘재창업’하고 있다. 문어발 소리를 듣던 사업영역은 절반까지 줄일 각오로 재편하고 있고 선택과 집중을 위한 내부 기준도 만들었다. 본사는 물론 계열사 대표도 ‘김범수 창업자의 지인 그룹’이 아닌 이들로 바꾸고 있다.

1. “주인 없는 회사 다닌다”던 직원들…‘자율 → 중앙집권’ 분위기 바뀌어

김범수

김범수

카카오는 지난 10여년간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하며 ‘카카오가 하면 다르다’는 신뢰 자본을 쌓았다. 하지만 한순간 공든 탑이 무너지며 ‘혁신의 상징’에서 ‘국민 밉상’으로 전락했다. 한때 60조원까지 치솟았던 시가총액은 현재 24조원이다. 그래서 ‘뉴(new) 카카오’는 단순한 경영전략이 아닌, 생존을 위한 승부수다.

김범수가 돌아왔다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으며 김범수 창업자가 경영 전면에 복귀한 게 지난해 11월. 지난 넉 달간의 그는 과거와 많이 달랐다.

경영 복귀 전 김 창업자는 통상 주 1회 회의 참석차 회사로 출근했다. 그마저도 비대면 참석이 많았다. 경영진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지만 직원 입장에선 긴장감이 풀리는 것도 사실. 하지만 복귀 후엔 주 7일 출근하며 사안을 챙기고 있다. 얼굴 보기 쉽지 않던 창업자가 매일 나오자 사내 분위기도 급변했다. 카카오의 한 직원은 “‘우리는 주인 없는 회사에 다닌다’고 얘기할 정도였는데 요즘엔 사옥 꼭대기인 15층 김 창업자 사무실 불이 밤에도 안 꺼진다”며 “전반적으로 회사의 체계가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김 창업자는 올해부턴 매주 화요일 CA협의체 위원장과 만나고, 매달 그룹사 대표단을 모아 회의를 주재한다. 2022년 3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뒤 처음 있는 일. 카카오는 그간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라’며 직원의 전방위적 도전을 장려했고, 이를 계열사로 만들어 성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계열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김 창업자의 생각이다.

이젠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는 ‘측근 중심 경영’도 사라지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창업 동지 그룹이 중책과 요직에서 물러나고 있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이달 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 사실상 카카오 ‘1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전면 퇴진한 셈이다. 카카오는 재판을 받는 배재현 투자총괄대표도 사내이사에서 자진 사임했다고 지난달 28일 공시했다.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는 외부 도움을 받아 정리 중이다. SM엔터 경영진이 실체가 불분명한 기획사를 시세보다 비싸게 샀다는 의혹, 카카오모빌리티가 유럽 택시호출 플랫폼 인수를 추진할 당시 사내 기밀이 유출됐다는 의혹 등을 김앤장이 조사하고 있다.

2. 말 많던  ‘측근중심 경영’탈피…“경쟁력 없는 계열사 절반 축소”

뉴 카카오, 뭐가 달라지나

창업자가 바뀌니 카카오도 변하고 있다. 김 창업자와 함께 뉴 카카오를 이끌 정신아 대표 내정자는 오전 7시30분이면 출근해 하루 16시간 이상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문어발’로까지 불린 카카오의 계열사 수는 137개(2월 기준). 카카오는 AI사업 관련 성장성, 해외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내부 기준에 맞춰 사업 분야를 조정하고 계열사 수를 줄이려 한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고 해외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하기 위한 작업이다. 다른 계열사는 원점 단계부터 검토한 뒤 흡수, 합병, 매각 등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카카오 내부적으론 계열사 수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핵심은 줄이는 계열사 숫자가 아니라 AI와 글로벌이라는 기준이다.

올해 들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엔터),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증권에서 새 대표가 내정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글로벌 역량이 검증된 실무자의 내부 승진’. 장윤중(엔터), 한상우(게임), 신호철(증권) 내정자는 모두 해외시장 개척에 강점이 있는 인물이다. 본사·계열사 간 수평적 구조는 버렸다. 이제는 본사가 중앙집권하는 체제. 이전엔 그룹 전체 회의가 따로 없고, 각자도생으로 계열사마다 알아서 활동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CA협의체가 산하 5개 위원회를 통해 계열사로부터 정기적으로 업무보고를 받는다. 각 위원장이 담당 분야별 계열사를 책임지고 관리한다.

3. ‘AI+서비스 시너지’에 명운 달려…‘국민 밉상’ 탈피, 신뢰 되찾아야

AI 시대, 뉴 카카오의 숙제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앞으로 10년은 결국 AI로 정의될 것.” 김범수 창업자는 2019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찌감치 AI,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단은 빨랐으나 실행은 늦었다. 사법 리스크 등이 겹치며 현재 카카오의 AI는 경쟁자에게 뒤처졌다는 평가다. 김 창업자는 최근엔 지인에게 “갈라파고스처럼 한국시장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를 토로했다. 거대언어모델 등 말 잘하는 AI의 등장으로 언어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과거처럼 한국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신사업만 문제일까.

카카오도 AI에 명운을 건다.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뿐 아니라 카카오 본사 안에서도 AI 연구개발(R&D) 조직을 만들었다. 다만 경쟁자와 결은 조금 다르다. AI보다 ‘서비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sLLM(경량화 거대언어모델)과 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해 카카오가 원래 잘하는 소비자 친화적 서비스를 붙여 혁신을 만들어내겠다는 방향이다. 기술 자체의 고도화보다는 기술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만드는 게 목표다.

고칠 건 고치더라도 모바일 시대 굵직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올드 카카오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카카오톡은 누구나 아는 서비스였던 문자메시지를 무료로 풀어낸 혁신. 소통의 허들을 무너뜨리며 출시 이후 10년간 누적 7조 6000억 건이 발송됐다. 기업·기관에서 정보성 메시지를 발송하는 서비스 ‘알림톡’의 경우 누적 발송 건수는 1270억 건(1월 기준)에 달한다. 평균 26원인 긴 문자(LMS)로 보낸다고 치면, 알림톡(7원 기준)으로 약 2조4100억원을 아낀 셈이다. 심야시간 ‘따따블’을 불러야만 갔던 단거리도 쉽게 택시 이용이 가능해졌다. 심야시간대 5㎞ 미만 단거리 호출의 배차성공률은 2018년 12월 19.5%에서 2023년 12월 41.8%로 뛰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카카오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려면 결국 철저한 쇄신이 먼저다. 카카오 쇄신의 바깥 축을 맡은 외부 기구인 ‘준법과 신뢰 위원회’(준신위)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여전히 논란 있는 인사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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