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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요란한 "민생치안"|사건·사고로 얼룩진 90년을 되돌아본다|꼬리 문 강력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90년은 새해 벽두부터 구로동 샛별룸살롱 집단살인사건이 일어나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급기야 강남병원 조직폭력배 유혈난투극, 법정증인 살해사건으로 이어져 강력 사건이 꼬리를 문 한해였다.
또 애인의 환심을 살 돈을 마련하려고 20대 가짜여대생이 유치원생 곽재은양(6)을 유괴 살해해 대학구내 옥상에 유기 했다.
동거비용에 쪼들린 20대가 오락실에 놀러온 국민학생을 목 졸라 야산에 버린 뒤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태연하게 세 차례나 돈을 요구하다 붙잡힌 사건도 발생했다.
장사밑천을 노린 20대 부부가 수원에서 5세 꼬마를 유괴해 저수지에 수장시켰는가 하면 자신의 조카를 유괴 살해한 뒤 누나에게 돈을 요구한 20대가 경찰에 검거됐다.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가족관계까지도 여지없이 파괴해 무너져 가는 우리사회의 도덕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은「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끔찍한 강력 사건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구치소에 수감된 폭력배두목이 담당검사를 위협한 사실이 밝혀져 범죄와의 전쟁을 무색케 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최숙연양(5)을 생매장시킨 경기도 양평의 일가족 4명 살해암매장사건은 인간 잔혹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경찰과 법원·검찰의 강력 사건에 대한 법 적용도 한층 엄격해져 양평 사건의 주범 이성준(30)은 도피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으며 공범 2명에게는 이례적으로 검거 한달만에 사형이 선고됐다.
법정증인 살해범 변운연(22)도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유괴살해 사건의 범인 5명도 모두 사형이 선고됐거나 사형구형을 받았다.
올해 들어 가정파괴범인 15명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을 포함하면 모두 40여 명의 강력 사범들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는 예년의 강력 사건에 대한 사형선고가 평균 한해 6명 수준인데 비해 6배 이상 늘어난 셈으로 올해 강력 사건이 얼마만큼 많이 일어났고 그 수법 또한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피해를 본 가족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우리 딸의 비극을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 더 이상 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영결식장에서 울부짖던 숙연양의 어머니 유은주씨(33)는 한달에 한두 번씩 꼭 경기도 포천의 딸 무덤을 찾아 마음의 상처를 달랜다.
유괴범에게 유일한 혈육인 희성군을 잃은 창고지기 김병숙씨(52)는『이제 더 이상 세상 살맛이 없다』며『범인이 사형을 당하고 나면 나도 아들 뒤를 따라가겠다』는 넋두리를 계속해 수사담당형사는『사건 하나로 또 사람이 죽게 됐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10월 23일에는 주택가 주변 불량배들에게 돈을 빼앗긴 신영철군(11·송파국교6)이『범죄를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 자살해 큰 충격을 주었다.
한편 경기도 화성에서는 지난달 16일 아홉 번째 강간살인사건이 발생,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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