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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독일군 도청했나…"타우러스로 크림대교 공격" 녹취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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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우크라이나가 독일에 지원을 요청해온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타우러스를 둘러싼 녹취 파동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도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군 고위 간부들의 대화에서 "타우러스로 (러시아의) 크림대교를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일부 국가의 우크라이나 파병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타우러스 지원 문제까지 겹치며 서방과 러시아 간 신경전이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당장 러시아 측은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실상 개입하려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일각에선 "이번 녹취록 파문은 서방의 내부 분열을 유도해 독일의 타우러스 지원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공작"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지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을 공급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지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을 공급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러시아 국영방송 RT가 지난 1일(현지시간) 녹취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녹취는 독일 공군의 잉고 게르하르츠 참모총장과 작전·훈련참모인 프랑크 그래페 준장, 또 다른 장교 2명이 지난달 19일 암호화되지 않은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에서 나눈 대화로 파악됐다.

38분 분량의 녹취에서 이들은 "크림대교는 매우 좁은 목표물이어서 타격하기 어렵지만, 타우러스를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사일이 어린이집에 떨어져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크림대교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동쪽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다. 전쟁 발발 이후 보급로를 끊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표적이 됐다. 타우러스는 최대 사거리 500㎞에 떨어진 목표물을 정밀하게 공격할 수 있는 첨단 미사일이다.

러시아 "독일, 전쟁 개입하냐" 맹비난   

러시아 당국은 RT의 녹취록 공개 이후 독일에 공세를 펴고 있다. 공군 장교들이 크림대교 폭파를 언급한 건 독일이 무기 지원을 넘어 사실상 전쟁에 개입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게 러시아 측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독일에 설명을 요구한다"며 "질문에 답을 회피하려는 것은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의 오랜 라이벌인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고 비난했다.

지난달 27일 독일에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타우러스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해 줄 것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팻말에는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이 언제 끝날지 묻지 말고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물어보세요"라고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독일에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타우러스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해 줄 것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팻말에는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이 언제 끝날지 묻지 말고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물어보세요"라고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RT는 녹취를 공개하면서 출처를 밝히진 않았다. 보도 하루 만에 독일 국방부는 독일 공영방송 ARD에 "공군 관계자들의 내부 대화가 도청 당했다"고 시인했지만, 도청을 누가 했는진 명확히 하지 않았다.

ARD는 "이번 녹취 유출은 독일 정보기관 입장에선 재앙"이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 2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도청 사태에 대해) 고강도로 신속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측이 독일 등 유럽을 상대로 도청이 가능하다는 정보력을 과시한 사태로 풀이했다. 타우러스가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무기인 만큼 서방 내에서 분열을 유도해 타우러스 지원을 막겠다는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마리 아그네스 침머만 독일 연방하원 국방위원장은 "러시아가 숄츠 총리를 압박해 타우러스 미사일 지원을 막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도청은)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 도구 중 하나”라며 “(도청한) 내용이 공개되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부터 독일에 타우러스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숄츠 총리는 확전 우려를 이유로 타우러스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지난달 26일에도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3일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의 페오도시아 항구 근처에서 강력한 폭발이 여러 건 보고됐다"며 "이후 도로 교통이 일시적으로 통제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 크림반도 행정당국에 따르면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다리의 도로도 폐쇄됐다. 하지만 러시아 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공격을 받은 것인진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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