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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기획관 "포탄 당장 필요…한국 같은 방산강국과 협력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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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토는 자체 방산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방산 강국과 협력하고자 합니다."

베네데타 베르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책기획관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나토는 포탄 등 당장 필요한 군수품을 신속히 외부에서 조달할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베네데타 베르티 나토 정책기획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베네데타 베르티 나토 정책기획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나토 안에선 유럽에 부족한 군수품을 한국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한국이 최선의 거래처라면 한국산 무기를 사야 한다"는 익명의 나토 관계자 발언을 보도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앞서 나토 회원국들은 개별적으로 한국산 무기 구매 계약을 맺었지만 나토 차원에서 한국산 무기나 군수품을 구입한 적은 없다.

이날 인터뷰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국제전략포럼(ISF)이 서울에서 공동 개최한 ‘2024 ISF 글로벌 서밋’을 계기로 이뤄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외교·안보 전문가인 베르티 기획관은 2018년부터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직속 정책기획관으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UNAOC(유엔문명연대) 회원으로 활동했고 국제안보 관련 테드(TED) 영상에도 다수 출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네데타 베르티 나토 정책기획관은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안보를 비롯해 다양한 측면에서 나토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베네데타 베르티 나토 정책기획관은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안보를 비롯해 다양한 측면에서 나토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 파트너(AP4,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중 하나다. 한국을 비롯한 AP4가 나토에 왜 중요한가.
세계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이 전 세계 안보와 직결된다. 이런 배경에서 나토는 한국을 비롯한 AP4 국가들을 2년 연속 정상회의에 초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AP4와 나토가 연대해 강력한 집단 안보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AP4가 집단 안보 체제로 작동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나토가 아니라 각국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주권국을 향해 나토가 ‘우리와 함께하라’거나 ‘함께하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나토는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 국가들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이룩했다. 그러나 나토 헌장에 따르면 나토는 역내 조직으로 규정돼 있다. 나토는 회원국이 아닌 국가와도 깊고 유연한 협력을 할 수 있지만, 이는 회원국 간 온전한 협력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들과 회동하는 모습.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크리스 힙킨스 당시 뉴질랜드 총리.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들과 회동하는 모습.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크리스 힙킨스 당시 뉴질랜드 총리. 대통령실.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도울 최선의 방법은 각국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군사적, 재정적, 인도적 지원이 모두 중요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략 전쟁이 성공하면 유럽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전쟁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북한과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가 잘못된 교훈을 얻도록 둘 순 없다. 지금 우리가 내는 비용은 푸틴이 승리했을 때 내야 할 대가보다는 훨씬 적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럽 국가들이 한국으로부터 포탄 등을 사려 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나토 회원국의 방위 산업은 수년간 ‘적시 생산 방식’(just in time·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생산해 재고 최소화)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토 회원국들의 자체 방산 역량을 다시 끌어올려야 할 뿐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다른 방산 강국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많은 나토 회원국이 기술과 생산력에서 앞서 나가는 한국과 협력하고 있지 않나. 당장 필요한 탄약 등 군수품을 외부에서 신속히 확보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독일의 게파르트 자주대공포를 운용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독일의 게파르트 자주대공포를 운용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북핵 위협 때문에 한국 내에선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상당하다. 나토식 핵 공유도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
나토 또한 미국의 확장억제에 기반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 등 핵 보유국에 의해 지원 받는 ‘핵 동맹’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모두가 핵 억지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러시아는 핵을 손에 쥐고 협박하고, 중국은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핵 현대화를 추진하며, 북한은 수많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무모한 도발을 한다. 게다가 북한은 포탄을 수출해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돕고 있다. 각국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국제 질서를 지키면서도 국방력과 억지력을 강화하는 게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러시아의 침공을 부추기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집단 방위를 규정한 나토 조약 5조에 의문을 던지는 발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잠재적 적과 경쟁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서다. 방위비 분담에 있어 나토 회원국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올해 안에 나토의 18개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를 2% 이상 지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백악관에 누가 있든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2019년 12월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2019년 12월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베르티 기획관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한 질문에 "대만 인근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압 행위는 유럽 안보에도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나토는 중국과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나토는 2019년 중국에 대해 최초로 우려를 표명했고 2022년에는 '전략 개념'을 개정해 중국을 '구조적인 도전'으로 명시했다.

중국은 나토에 대해 '냉전의 유물'이며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동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주장이다. 나토는 배타적인 조직이 아니며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한 적이 없다. 또한 모든 주권 국가는 동맹을 택할 권리가 있다. 어떤 그룹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웃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선 안 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얻었다.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를 쥐고 유럽을 협박하지 않았나.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동맹국 공급망 연대)과 공급망 다변화가 더욱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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