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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화약고' 또 터지나…몰도바내 친러 지역 "러시아 도와달라"

중앙일보

입력

몰도바 내 친(親) 러시아 성향의 분리독립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몰도바 정부의 경제 탄압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정연설 하루 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하자, 우크라이나에 이어 또다른 화약고가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몰도바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남서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다. 트란스티스트리아는 국제법상 몰도바에 속해 있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몰도바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미승인 국가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CNN·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이날 최대 도시 티라스폴에서 특별 회의를 열고 몰도바 정부가 지난 1월부터 수입 관세를 징수하고 수입품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경제 전쟁’을 일으켰다며 러시아 의회에 보호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8일(현지시간) 몰도바의 분리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특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몰도바의 분리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특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특별 회의에는 바딤 크라스노셀스키 트란스니스트리아 수장과 이 지역 의원, 관리들 수백명이 모두 참여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이 정도 규모의 특별 회의가 열린 것은 역대 7번째로, 매우 드문 일이라고 AFP는 전했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06년 특별 회의에서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러시아의 통합에 대한 국민 투표 시행이 결정됐다. 당시 투표 결과, 97%가 러시아와 통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인구 47만 명 중 22만 명이 러시아계다.

이번 결의안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가 사회·경제적인 탄압을 시행 중이고, 이는 인권과 자유무역에 대한 유럽의 원칙 및 접근 방식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의회에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유엔·독립국가연합·유럽의회 등 국제 기구에 몰도바와의 분쟁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특별 회의는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국정연설 하루 전에 열려 주목 받았다. 폴리티코는 당초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특별 회의를 통해 러시아에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통합해달라고 직접 요구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 결의안은 이보다 수위가 낮아진 것이라고 전했다.

몰도바 동부 지역에 자리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2년부터 친러 성향의 분리주의 당국이 통제하며, 사실상 분리 독립 상태다. 국제법상 미승인 국가로, 몰도바 내 영토로 간주된다. 러시아군 1500명이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주둔 중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히스테리 조장하려는 선전 활동”

몰도바 당국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의 행보에 대해 “히스테리를 조장하려는 시도”이자 “선전 활동”이라고 일축했다. 몰도바 정부 대변인 다니엘 보다는 “트라스폴의 선전 선언을 거부하며,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의 유럽연합(EU) 가입 추진으로 평화·안보·경제 통합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몰도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EU 가입을 추진해왔다. EU는 지난 2022년 6월 몰도바에 EU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다. EU 가입을 위한 조치로, 몰도바 정부는 지난 1월 트란스니스트리아 내 기업에 대한 관세 감면을 폐지하고, 몰도바의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부과금을 지불하게 했다.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오른쪽)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지난해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오른쪽)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지난해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발틱 국방대학의 안보학 교수는 드미트루 민자라리는 “그간 몰도바 정부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관세를 감면해 실질적으로 트라스폴 분리주의 정권에 자금을 지원해준 셈”이라며 “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더 이상 트란스니스트리아 정권을 용인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동남부유럽 정상회의’ 참석 차 알바니아를 방문 중인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은 “평화적인 해결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국가 경제 재통합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바니아를 방문 중인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 EPA=연합뉴스

알바니아를 방문 중인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 EPA=연합뉴스

러 “신중히 검토할 것”, 美 “러 예의 주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요청에 러시아 외무부는 즉각 “이 지역 시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해당 요청을 관계 부서에서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민자라리 교수는 “이번 분쟁은 러시아 당국에겐 기회”라면서 “곤경에 처한 바다에서 낚시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4월, 당시 러시아 중부 군사지구 부사령관 루스탐 미네카에프는 “특수군사작전의 목표 중 하나는 러시아가 동포들과 재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를 거쳐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육로 확보를 계획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 내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크렘린은 몰도바의 EU 가입을 방해하기 위한 대리인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이용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몰도바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확실히 지지한다”면서 “러시아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2년 국정 연설을 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2022년 국정 연설을 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한편, 이날 옛소련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주도의 군사·안보 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상주 대표를 두지 않고 고위급 행사에도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CSTO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친러 연맹의 균열 조짐으로도 해석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CSTO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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