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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 이승만 다큐 방영한 김인규 "'건국전쟁' 좋은 계기 됐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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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2일 중앙일보를 방문해 2011년 KBS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사내외적 반발에 부딪힌 경험을 본지에 전했다. 권혁재 기자

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2일 중앙일보를 방문해 2011년 KBS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사내외적 반발에 부딪힌 경험을 본지에 전했다. 권혁재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개봉(1일) 24일 만에 누적 관객 92만명을 돌파했다.
이 전 대통령 관련 다큐는 2011년 KBS에서 방영된 바 있다.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이다.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은 '건국전쟁'에 앞서 이 다큐에서 처음 공개됐다. KBS 노조와 진보·역사 단체의 반발에도 당시 김인규 KBS 사장은 방송을 강행했다.
현재 한국장애인재활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사장(74)은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KBS에서 이승만 다큐를 만들 때만 해도 ‘독재 찬양 방송’이라는 비난과 압박에 시달렸다”면서 “그 일로 역대 대통령, 경제 인물들을 다루려던 특별 기획이 올스톱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100일간 시위하며 사장 퇴진을 촉구했는데, 섭섭하게도 보수 진영에서 이승만 다큐가 왜 문제냐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 마음 고생을 했다”면서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영방송이 다양한 분야에서 객관성을 담보한 다큐를 만드는 데 ‘건국전쟁’이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에미상 수상 전 KBS 사장 "13년 전 KBS 이승만 다큐 강행" 

김 전 사장은 1973년 KBS 공채 1기 기자로 입사, 정치부장‧뉴욕지국장‧보도국장 등을 거쳐 2009년 제19대 사장에 취임했다.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장을 맡고, 이듬해 국제 에미상 공로상을 받았다.
KBS 특별 기획 다큐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2011년 9월 28~30일 방영됐다. 1편 ‘개화와 독립’, 2편 ‘건국과 분단’, 3편 ‘6‧25와 4‧19’의 총 3부작 구성이다. 김 전 사장에 따르면, “7000만~8000만원이던 다큐 편당 제작비를 1억원 넘게 배정한” 대작이었다.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은 DVD(사진)로도 출시됐다. 사진 김인규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은 DVD(사진)로도 출시됐다. 사진 김인규

김 전 사장은 “2010년 9월 다큐 제작 PD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한국전쟁 10부작 시리즈 같은 것을 만들고 싶은데 먼저 인물 다큐로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다큐를 예로 들기에 제가 ‘이왕 만들려면 이승만 대통령부터 역대 모든 대통령을 순서대로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돌이켰다.
“김구 같은 정치인, 경제인들도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와, 다큐 제목을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로 정하고 2011년 광복절 전후 방송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언론노조 "뉴라이트의 이승만 부활 프로젝트" 비판 

그러나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뉴라이트의 이승만 부활 프로젝트”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김 전 사장은 "방송저지 비상대책위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KBS가 보수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이승만 다큐를 제작하려고 한다고 의심했다"면서 "우려를 줄이기 위해 역사학자 및 방송계 전문가로 자문위원단을 꾸려 논쟁이 될만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당초 5부작 기획이 3부작으로 축소되고, 방영 일정도 예정보다 밀렸다.

2011년 7월 25일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 제작에 반발하는 '친일 비호 독재자 이승만 미화 방송 규탄' 기자회견과 김인규 당시 KBS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 주최로 한국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렸다. 사진 김인규

2011년 7월 25일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 제작에 반발하는 '친일 비호 독재자 이승만 미화 방송 규탄' 기자회견과 김인규 당시 KBS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 주최로 한국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렸다. 사진 김인규

당시 3부작 다큐 연출을 맡은 김정수 CP(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진보 쪽에선 이승만이란 이름 자체가 방송에 나오는 걸 싫어했다”고 돌이켰다. 논란 속에서도 다큐를 만든 이유는 "우리의 초대 대통령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어 "‘건국전쟁’이 공개한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 등도 미국 국립기록보관소에서 구입해 다큐를 통해 방영했다"며 "다큐는 3부작 평균 8%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후 DVD 및 책자로도 발간됐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환영 인파 속에 자동차 행진을 하는 장면이다. 최근 다큐 영화 '건국전쟁'에 수록돼 화제를 모았다. 사진 김덕영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환영 인파 속에 자동차 행진을 하는 장면이다. 최근 다큐 영화 '건국전쟁'에 수록돼 화제를 모았다. 사진 김덕영

김 전 사장은 “당시 하와이의 독지가가 익명으로 다큐 DVD를 수천 장 구매해 현지 배포하기도 했다”면서 13년 만의 이승만 다큐 흥행 요인을 '목마름'으로 분석했다. “좌파 시각의 다큐가 많다가 우파적 다큐가 나와 반작용이 생긴 것 같다”면서다.
다만, 그는 '건국전쟁'에서 "미국 워싱턴에 이승만이 아닌 서재필 동상이 있다고 지적한 것, 김구에 대한 여러 역사적 평가를 묘사한 부분은 정파적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반면 다큐가 “‘런승만’ 오명을 씻어준 부분, 3·15 부정선거가 부통령 선거였다는 걸 분명히 해준 것 등은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김 전 사장은 매년 ‘4‧19 민주평화상’을 수여하는 서울대 문리동창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양극단 목소리 커, 중도층 약해져…사회 병폐"

김 전 사장은 그간 진영 논리 탓에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기회를 잃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 극단 세력의 목소리가 커서 중도층 목소리가 약해지는 것”을 우리 사회의 병폐로 꼽았다.
자신의 재임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중국 공산당 음악가인 정율성 다큐 제작도 허가했다가 비판 받은 것을 돌이키며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같은 것도 양 극단 세력의 강한 입장 때문에 지도자들이 흔들려서 나온다”면서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KBS가 13년 전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박정희 다큐를 제작했다면, 이후 모든 대통령들의 다큐를 영국 BBC처럼 방송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다매체 시대에 KBS가 살아남는 전략은 공영방송답게 뉴스‧스포츠와 함께 다양성·객관성을 겸비한 다큐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1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에는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 제작에 반발하는 내용이 표제 기사에 실렸다. 사진 김인규

2011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에는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 제작에 반발하는 내용이 표제 기사에 실렸다.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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