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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와 성웅 이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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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영화는 시대의 무의식을 담는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최민식 주연 영화 ‘파묘’(22일 개봉·사진)는 장재현 감독이 100년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보며 느낀 ‘복합적인 감정’에서 출발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라면 1920년대 일제강점기다. 영화는 어느 갑부 집안의 묘에서 출발해 구악의 잔재를 줄줄이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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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퇴마의식을 그린 ‘검은 사제들’(2015), 신흥 종교 비리를 파헤친 ‘사바하’(2019) 등 장 감독 전작을 잇는 오컬트 공포영화다. 선대가 부정하게 모은 부(富)만 챙겨 미국 LA로 달아난 후손들은 알 수 없는 유전병에 시달린다. 집안 악운을 끊어내려는 몸부림이 죄 없는 새파란 목숨까지 희생시킨다. 이 집안의 갓 태어난 손주부터 속사정을 모른 채 묘 이장에 동원된 이들이다. 여느 오컬트물의 나이 지긋한 무당 대신, 배우 김고은·이도현이 불경 문신을 새긴 ‘힙스터’ 무당을 연기했다. ‘먹고사니즘’을 위해 ‘존버’하는 젊은 세대가, 잘 알지도 못했던 역사의 잔재가 부른 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물이 되어간다. 그런 과정이 요즘 고달픈 N포 세대의 반영처럼 다가온다.

이들의 윗세대이자 사건에 휘말린 풍수사 역을 최민식이 맡았다. 딸의 결혼식을 앞둔 그는 자식뻘 무당들과 적에 맞선다. 극 중 피투성이가 된 채 최후의 적에 맞서는 최민식의 모습에서 뜻밖에 ‘명량’(2014)의 이순신 장군이 겹쳐진다. 올해 마흔셋 ‘낀 세대’인 장재현 감독이 보고 싶은 ‘어른상’의 제시일지 모른다.

베를린영화제 현지에선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모두 망라한 영화”란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 관객이 ‘파묘’에 느낄 감정은 좀 더 복잡하다. 공포 너머에 잊어선 안 될 역사적 담론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