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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전쟁' 시작됐다…국내 첫 디저트 전문관 문 연 까닭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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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플레이스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15일 첫 선을 보인 국내 최대 규모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는 평일 이른 오후임에도 주말처럼 북적였다. 면적 5289㎡(1600평)에 43개 빵·케이크·제과 브랜드가 입점한 규모가 무색하게 빈 쇼윈도가 곳곳에 나타나기도 했다. 신세계 백화점에 따르면 개점 후 첫 주말인 지난 16~18일 이곳을 찾은 인원만 10만 명. 강남점 디저트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4% 신장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에 문을 연 디저트 전문과 '스위트 파크'에 방문객들이 몰렸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에 문을 연 디저트 전문과 '스위트 파크'에 방문객들이 몰렸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식품관 리뉴얼의 서막은 ‘디저트’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은 지난 2009년 이후 약 15년 만에 식품관 리뉴얼을 단행했다. 그 첫 번째 타자가 ‘스위트 파크’다. 오는 6월에는 센트럴 시티 내 파미에스트리트와 면세점이 철수한 공간을 합쳐 ‘하우스 오브 신세계’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푸드 홀과 와인 숍, 라이프스타일숍을 연다는 계획이다. 기존 식품관(7602㎡·2300평)은 슈퍼마켓과 델리 위주로 새롭게 문을 연다.

모두 리뉴얼을 마치면 전체 약 2만㎡(6000평)로 국내 최대 규모 식품관이 된다. 현재 국내 백화점 식품관 중 가장 큰 규모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1만4800㎡·4500평). 그동안 더현대 서울은 ‘팝업 특화 백화점’을 무기로 화제의 디저트 브랜드들을 대거 유치해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신세계 ‘스위트 파크’ 오픈을 두고 “소리 없는 ‘디저트 전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시계 백화점 강남점은 스위트 파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식품관 리뉴얼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신시계 백화점 강남점은 스위트 파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식품관 리뉴얼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백화점에서 식품관, 그것도 디저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 시각적 매력으로 무장한 디저트만큼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아이템은 없다. ‘소금빵’ ‘베이글’ ‘약과’ 등 유행이 빠른 식음료 업계에서도 트렌드를 주도하며 젊은 세대들을 이끈다.

디저트 테마파크, 음식의 황홀경 구현한다

또 맛집으로 이름난 브랜드를 입점시켜 고객을 끌어들인 뒤, 객단가가 높은 위 층 매장으로 올려보낼 수 있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 서베이’ 의 ‘백화점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백화점 방문 목적으로 식품을 꼽은 응답자는 전체 4분의 1 (25.6%)에 달했다.

백화점의 ‘디저트 전쟁’은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 헤로즈 백화점은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대대적 식품관 리뉴얼을 단행했다. 커피와 베이커리를 판매하는 ‘로스터리 앤 베이커리 홀’, 신선 식품을 취급하는 ‘프레쉬 마켓 홀’, 초콜릿만 취급하는 ‘초콜릿 홀’ 등 전문관 형식으로 한 장르를 깊게 파는 형태다. ‘패션의 이세탄’으로 불렸던 일본 이세탄 백화점 본점도 지난 2007년 식품관 리뉴얼을 통해 대규모 유명 디저트 존을 구성해 화제가 됐다. 일본에서 ‘데파지카(백화점+지하)’는 음식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테마파크로 통한다.

영국 헤롯백화점 푸드 홀 전경. 신선식품홀과 초콜릿홀, 델리홀 등 식품을 각 장르별로 나눠 소개한다. 사진 헤롯백화점 홈페이지

영국 헤롯백화점 푸드 홀 전경. 신선식품홀과 초콜릿홀, 델리홀 등 식품을 각 장르별로 나눠 소개한다. 사진 헤롯백화점 홈페이지

신세계 역시 ‘스위트 파크’로 디저트의 테마파크를 선보인다는 야심이다. 우선 전체 입점 브랜드의 70%를 백화점에 없었던 브랜드로 구성했다.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피에르 마르콜리니’와 일본 파이점 ‘가리게트’가 대표적으로, 둘 다 국내 첫 진출이다. 오픈 후 매일 300팀의 대기 줄을 세우고 있는 부산 ‘초량온당’도 백화점 첫 입점이다. 프랑스 파리서 한인 서용상 제빵사가 운영하는 ‘밀레앙’의 첫 분점, 성수동 소금빵 맛집 ‘먼치스앤구디스’도 선을 보였다. 이 밖에 서울 흑석동 ‘쟝블랑제리’, 서촌의 ‘스코프’, 청담동 ‘해피해피 케이크’, 한남동 ‘콘디토리 오븐’ 등 유명 디저트 브랜드를 망라했다.

신세계백화점 스위트파크는 국내외 43개 빵, 제과, 디저트 브랜드를 망라한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스위트파크는 국내외 43개 빵, 제과, 디저트 브랜드를 망라한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스위트 파크’ 프로젝트를 담당한 허성무 신세계 디저트 바이어는 “해외 브랜드는 수십 차례 화상 회의를 하고, 지역 브랜드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수차례 찾아가는 등 브랜드 섭외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디저트 매니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뜨는 브랜드 정보를 입수, 직접 찾아가 맛보다 보니 7~8kg 체중이 불었다는 김수형 바이어는 “멀리 찾아갈 필요 없이 한 곳에만 와도 디저트 트렌드가 다 보이고,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디저트계 ‘테마파크’가 목표”라고 말했다.

‘반짝 팝업’보다 오래가는 디저트 맛집 가꾼다

눈에 띄는 것은 예상외로 ‘팝업 존’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과자류·케이크류·빵류 등 장르별 구획 가운데, 브랜드 2~4개가 들어갈 정도의 일부 구역만 팝업으로 운영한다. 유행이 빠른 디저트 장르의 속성에 따라 새로운 콘텐트를 보여줄 수 있는 팝업은 열 되,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와 쇼윈도가 돋보인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와 쇼윈도가 돋보인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검증되지 않은 반짝 브랜드보다는 업계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만 모아 ‘찐’ 디저트 성지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다. 이는 최근 ‘팝업’을 주요 무기로 삼는 타 리테일과는 차별화하는 부분이다.

실력자들을 모은 만큼 오픈 주방·라이브 퍼포먼스는 또 다른 볼거리다. ‘비스퀴테리 엠오’는 매장 한쪽에서 크레이프 소스에 플람베(주류를 첨가해 알코올을 날리는 조리법)를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파이집 ‘가리게트’에서도 밀푀유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곳곳의 오픈된 주방에서는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곳곳의 오픈된 주방에서는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온라인 장보기 시대, 오프라인의 ‘맛’ 통할까

한편 국내 백화점들은 최근 일제히 식품관 리뉴얼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지난해 12월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하 1층에 1만1150㎡(3500평) 규모의 식품관 ‘푸드 에비뉴’를 조성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도 지난해 18년 만에 식품관을 리뉴얼해 프리미엄 다이닝 홀 ‘가스트로 테이블’을 열었다.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지난해 12월 식품관을 리뉴얼 했다. 고객들이 지하 1층 식품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지난해 12월 식품관을 리뉴얼 했다. 고객들이 지하 1층 식품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방향성은 세분화·고급화다. 단순한 물건 나열보다는 새로운 미식 문화 경험 공간을 추구한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는 코로나19 기간 보복 소비 영향으로 백화점 매출을 견인했던 명품의 성장세 둔화가 꼽힌다. 식음료(F&B)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불경기에 비교적 단가가 낮은 식음료로 고객을 끌겠다는 전략도 읽힌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지난해 7월 식품관을 리뉴얼해 프리미엄 다이닝 홀 '가스트로 테이블'을 선보였다. 사진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지난해 7월 식품관을 리뉴얼해 프리미엄 다이닝 홀 '가스트로 테이블'을 선보였다. 사진 현대백화점

온라인 장보기 시대에 백화점 식품관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디저트와 같은 식음료는 직접 눈으로 보고, 당장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유통이 이커머스 대비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대표적 분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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