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국 모든 병의원 비대면 진료 허용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78호 01면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대응해 위기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리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는 전공의는 고발하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기로 했다.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도 전면 허용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강행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정부는 23일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최상위인 ‘심각’으로 올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했다. 코로나19 때를 제외하면 ‘심각’ 단계 격상은 처음 있는 일이다. 중대본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각각 1·2차장을 맡았다.

중대본 집계 결과 지난 22일까지 전국 94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7863명이 병원을 이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이 중 70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5976명에겐 업무 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보내 서명을 요청한 상태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센터에도 40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전공의의 약 70%가 진료를 중단한 사실이 확인돼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정부는 진료 차질이 심화하자 이날 비대면 진료도 전면 허용했다. 지금은 동네 의원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데 당분간 30병상 이상 병원과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초진·재진 구분 없이 가능하다. 한 환자가 같은 병원에서 월 2회 이상 비대면 진료를 받지 못하게 돼 있는데 이것도 없어졌다. 한 의료기관이 전체 진료 중 비대면 진료를 30% 이상 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제한도 풀렸다.

김한숙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이번 조치의 주된 목적은 221개 수련병원 의사들이 전공의 이탈로 인해 수술·입원을 줄이고 외래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23일부터 외래진료는 비대면으로 대체하고 수술과 입원을 늘려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방의 환자가 병을 체크하려고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오지 않아도 돼 크게 유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자 입장에선 다니는 병원이 비대면 진료를 하는지 확인한 뒤 신청하면 된다.

“간호사가 대리 처방, 수술 봉합”…간호협회, 의료 공백 대책 마련 요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3일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40개 대학 부총장과 영상 간담회를 했다. 교육부는 전국 의과대학에 증원 신청 공문을 보낸 상태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3일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40개 대학 부총장과 영상 간담회를 했다. 교육부는 전국 의과대학에 증원 신청 공문을 보낸 상태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강력 대응 방침도 재차 확인했다. 법무부는 불법 집단행동 주동자뿐 아니라 배후에서 조종하고 부추기는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내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또 업무개시명령을 불이행한 전공의는 의료법 위반죄로 기소해 정식 재판을 받게 할 방침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이 나서 의사 집단행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의사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단체나 주요 인사 수사는 시·도 경찰청에서 맡고 진료 거부나 수술·진료 지연으로 사망 등의 위해가 발생할 경우 시·도 경찰청 형사기동대가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고발하고 즉시 출석을 요구한 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기로 했다. 또 인터넷이나 SNS에서 복귀 거부를 선동하는 경우 구속 수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서울 강남경찰서는 전날 전공의들에게 사직 전 병원 자료를 삭제하라고 종용하는 내용의 글이 게시된 사이트 소재지를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누가 봐도 무리하게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해 평온하던 의료 시스템을 재난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정부”라며 “그런데 재난을 수습하겠다고 중대본을 설치하는 코미디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에 대해서도 “현재 진료 차질이 빚어지는 곳은 중증·응급환자를 중점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인데, 중증·응급질환에는 적용조차 불가능한 비대면 진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주 위원장은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고 의료 현장에서 피땀 흘리는 의사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잘못된 정책을 강행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구성한 비대위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는 주말이 이번 사태의 골든타임으로, 주말 동안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면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정부가) 전공의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들과 행동을 같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병원에서 의료 공백을 채우고 있는 간호사들이 대리 처방과 대리 기록, 치료나 수술 봉합 등까지 도맡아 불법 진료에 내몰리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탁영란 회장은 “간호사들은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며 “정부가 말하는 진료지원인력(PA) 간호사들만 (공백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의료 현장의 모든 간호사가 겪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간호사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불법 진료 행위 지시였다. 협회는 “초진 기록지, 퇴원 요약지, 경과 기록지 등 각종 의무 기록 대리 작성과 환자 입·퇴원 서류 작성 등도 간호사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며 간호사들의 업무가 가중되면서 환자들의 안전 또한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협회는 그러면서 “정부가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를 토대로 리스트를 정리해 위임 불가 행위에 대해서는 즉시 행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위반했을 때 제재 방안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