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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투쟁해도 병원에서…정부, 2000명 숫자 집착 말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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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03면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

전공의 의료 중단으로 2차 의료기관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23일 진료를 기다리는 대전의 한 2차 병원 모습. [연합뉴스]

전공의 의료 중단으로 2차 의료기관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23일 진료를 기다리는 대전의 한 2차 병원 모습. [연합뉴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의사 파업의 주역인 권용진(54·사진) 서울대병원 교수가 전공의 집단사직의 법적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전공의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정부도 당장 법적 조처를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의사이자 법학자인 권 교수는 2000년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총괄 간사를 맡아 의사 파업의 최전선에 섰고 이후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와 대변인 등을 지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주역  

권용진

권용진

권 교수는 23일 페이스북에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올리며 전공의 집단행동의 법적 위험성을 지적했다. 먼저 권 교수는 “정부가 재난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는데 이는 정부가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근거가 된다”며 “주동자를 구속하고 강력한 행정처분을 빠르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그러면서 행정처분의 위험성을 법적으로 분석했다. “행정처분 기록은 의업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닌다. 국내 면허로 해외에 나가는 데도 치명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면서다. 지난 20여 년간 의료계 투쟁에 앞장선 김재정 전 의협 회장 등 두 명 외에는 의료업 제한을 받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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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의료계가 위헌소송을 내도 승소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의료계는 ‘업무개시명령이 의사의 직업 선택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사직이 인정되더라도 의료법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헌법 제36조 제3항에 ‘국가의 보건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게 없으면 승소 가능성이 크겠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국가의 책무가 다른 나라보다 강력하게 인정돼 승소 확률이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집단사직이 근로기준법 절차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전공의 근로 조건에는 민법 제660조 제2항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데, 전공의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사직서 제출 후 바로 병원에서 나간 점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며 “여러분의 행위가 단순한 사직으로 해석되기보다 목적을 위한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 의료법상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행정처분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것과 무관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짚었다.

전공의 행동이 의사 윤리 지침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권 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병원을 떠난 것은 의사 윤리 지침이 규정한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있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윤리적 원칙에 따라서 보더라도 중증 환자 수술이 지연되는 점을 고려하면 ‘나쁜 결과를 용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치적인 이유든 개인적인 이유든 병원을 나갈 때 여러분이 의사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의사 선배와 교수로서의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전공의가 병원의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선배로서 이런 현실을 물려줘 미안하고 안타깝다. 다만 이런 현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면서다.

권 교수는 “의업 포기는 여러분의 선택”이라며 “다만 계속 의업에 종사하고 싶다면 최소한 의사로서의 직업윤리와 근로자의 의무 등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종합하면) 여러분의 행동은 성급했다”며 “개인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한 뒤 정상적인 퇴직 절차를 밟고 떠나길 바란다”며 “투쟁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게 급속 성장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는 대한민국의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행동이라면서다. 권 교수가 글을 올린 뒤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전공의들에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 줘야”

왜 이런 글을 올렸나.
“전공의 중에는 내용을 자세하게 모르고, 어떤 처분을 받을지 모르고 병원을 나간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정처분 기록이 큰 장애물인가.
“해당국의 의사 시험을 보고 가면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한국 면허를 갖고 나가면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속칭 빨간 줄이 남게 된다. 이런 큰 피해를 받게 된다는 걸 누군가는 알려줘야 한다.”
변호사 조언을 받는다는데.
“헌법과 의료법을 같이 전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 대형 로펌도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위헌소송을 내도 질 게 뻔하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가.
“정부가 당장 주말에 (전공의를) 잡아갈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그러지 말아야 한다. 전공의들이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제발 숫자(의대 정원 규모)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 2000명 증원은 지나치다. 1000명 선으로 낮추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양쪽이 ‘강 대 강’으로 맞서지 말고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 정부도 그동안 의료 제도를 망가뜨린 데 큰 책임이 있다. 냉정하게 ‘우리도 부족했다’ ‘반성한다’고 해야 한다. 정부가 큰 힘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후배이자 제자가 피해를 받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네덜란드는 의료개혁위원회를 만든 뒤 10년에 걸쳐 개혁했다. 절대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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