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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태일이 소리내다

'미적분∙기하' 빠진 수능…AI 도입해 수학적 역량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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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ㆍ 前신전대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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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학 과목에서 미적분2와 기하가 빠지게 되면서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수능 수학 과목에서 미적분2와 기하가 빠지게 되면서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이과 수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사라진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인 필자는 ‘미적분2+기하’ 선택 과목 도입을 국교위 심의 과정 내내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교위에서 유일하게 수능으로 대학을 진학했기에 이과 수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합의는 ‘수능의 대격변’으로 맺어졌다. 일부에선 이과 수학의 수능 배제가 학생의 수학적 역량을 저하시키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새로운 혁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론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학생들의 수학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능보다 더 나은 제도를 찾아내야 한다. 알고 보면 수능이 다루던 수학 범위도, 필수 역량 확보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불수능·물수능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국민이 수능을 신뢰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합의되고 공인된 공통 기준을 일괄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발전된 시대상을 활용하여, 수능만큼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더 다양한 학습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내신·대학별 고사의 출제·평가 과정에 대한 ‘인공지능(AI)’의 전면 도입을 제안한다. 과거엔 ▶표준과 기준에 근거한 평가 ▶개별 특성을 고려한 입체적인 평가 ▶투명한 과정 공개와 부정 방지 조치라는 목표는 ‘이상적 구호’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실현 가능하다.

수능은 ‘언어’시험이다. 대학 수준의 주제로 생소하고 제한적인 상황이 주어지면 발견적 추론과 정확한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제한 시간 내 정답을 요구한다. 축구 선수가 기술을 익힌 후에도 체력 단련을 하듯 개념을 익힌 후엔 생각 근육을 훈련하는 것이 수능 공부 과정이다.

수학은 영어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공용어  

수학도 언어다. 만사 원리를 표현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다. 영어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 공용어다. 자신의 구상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선, 수학이 유창해야 한다. 또한 수학은 수능에서 유일하게 ‘쓰는’ 과목이다. 시험지에 여백이 가장 많다. 주어진 문제 상황을 따라 해석과 추론을 거쳐 답안 도출 과정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객관식 형태지만 주관식이나 다름없다. 출제 범위를 좁히면 제시할 문제 상황이 줄어든다. 동시에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과도하게 어려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적분2와 기하 등의 제외 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컴퓨터적 사고를 위해 필수적이다. 컴퓨터는 세상을 좌표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그 세계관의 움직임을 벡터로 이해한다. 미분 방정식과 차원 증감을 통해 분석과 예측을 거듭한다. 이를 위한 대용량 정보처리를 위한 수단이 행렬이다.

수학의 중요성과 심화 수학 도입은 다른 말이다. 다가올 시대를 지필고사 수능 제도가 온전히 뒷받침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겐 더 이른 시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취해낼 잠재력이 있음에도 대입까지 수능에 매어 젊음을 허비하게 하는 부정적 규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과 수학이 사교육 증가 요인이란 단편적 반응, 일부 최상위 학생만을 위한 의대 진학용 과목이라는 인식, 수능 과목이 아니면 공부를 안 할 거란 걱정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실태를 방증하고 있다. 학교 수업으로는 수능 대비가 불가능하고, 수능으론 대학이 원하는 역량을 평가하지 못하고, 대학은 실제 사회와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해졌다. 문제집의 답지가 없어도 문제를 촬영하면 풀이는 물론, 공부 방향까지 안내해 준다. 이 변화는 거부할 수 없으며, 비가역적이다. 이제 책보다 영상이 좋고, 그보단 짧은 추천 영상이 좋다. 심지어 입력이 없어도, 상황과 성향에 딱 맞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띄워준다. 스마트폰 상용화는 고작 10년 남짓인데,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개인의 인지와 지식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겨낼 수 없다. 인간만의 알고리즘, 즉, 주체적이고 다변적인 이성을 확립해야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교육 과정에 국가공인 AI 시스템 도입 필요  

필자는 국가공인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해 학습ㆍ평가ㆍ행정 등 교육 과정 전반에 전격 도입하길 제안한다. 지금까진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내는지에 따라, 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출제 근거와 평가 기준을 하나하나 세우고 조합하는 것도, 최종 성적이 갖는 의미를 상술하고 관리하는 것도, 선생님에겐 엄청난 부담이 된다. 결국 많은 과정이 어쩔 수 없이 경험과 직관으로 이뤄진다. ‘수행평가’와 ‘생활기록부’의 폐해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한다.

AI는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자동 채점과 결과 분석부터, 시험문제와 구성의 질에 대한 평가와 세부적인 과정 기록 관리까지 가능할 것이다. 이 결과에 기반하여 담당 선생님이 최종적인 검수를 거친다면, 시험마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전국 규모의 ‘모집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교육 AI의 성능은 사설 업체가 모방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을 악용하는 사교육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 ‘석차/등급’이 아니라 이런 학습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이 ‘내신 성적표’가 된다면, 충분히 수능만큼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신으로도 ‘심화 수학 역량 강화와 평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엔, 프로젝트ㆍ시뮬레이션 기반 학습을 통해 과목 구분을 막론한 현실 문제 해결력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경쟁심보다 호기심을 학습 유인으로 삼게 되고, 낙오자도 스스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전국 어디서든 같은 시스템이라면 지역 간 교육 격차도 완화될 것이다.

수능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책’을 강조하듯, ‘지필고사 수능’도 고유의 역할이 있다. 성취 확인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정하되, 서열보다 가치 있는 분석을 결과로써 제공하면 된다. 수능 성적표가 100장쯤 되면 어떨까. 그해 대입에 사용하지 못해도 다른 어학시험처럼 성취도 이해와 사회 진출에도 활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수능을 ‘한국인의 한국 대입에만’ 활용하지 않고, 해외대학 유학이나 유학생 입시에도 활용하여 국제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면 어떨까.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 업체들의 수능 콘텐트를 수억 명의 세계인들이 소비하게 된다면, 그 시장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ㆍ전 신전대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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