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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 “2000명은 교육 여건 고려할 때 수용 불가능한 숫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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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 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 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의사를 향한) 민원과 고소는 점점 증가하고 판결은 냉혹한데 경제적 보상은 적다. 뜻을 가지고 지방에 가더라도 환자들은 서울로 향한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정말 의사의 절대 수가 적어서인가.”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전공의 최세진(전 대한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씨는 20일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정책에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의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은 정부가 제시한 숫자를 성토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낮 12시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각 수련병원을 대표하는 전공의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추가 신청이 이어져 2배 넘는 회원이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한 전공의는 “(한꺼번에) 2000명의 의대생을 수련할 환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전성모병원 전공의로 재직하다 사직한 류옥하다씨는 “우리는 국민과 싸우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각자 사직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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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은 정부의 2000명 증원 정책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협이 제작해 대국민 홍보용으로 부착하고 있는 포스터엔 큰 글씨로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을 강력 규탄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51명(202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66명보다 낮지만, 외래진료 횟수(14.7회)나 총 병상 수(12.7병상) 등 다른 지표는 1위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정부는 OECD의 다양한 데이터 가운데 오직 의사 수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은 OECD 통계에서 의료 접근성이 좋은 나라로 최상위에 있다”며 “2000명 증원 추진은 의료비 부담 증가를 가져와 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어날 때 1인당 의료비는 22% 증가한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같은 날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생이 휴학 신청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날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생이 휴학 신청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의학계에서는 현재 의대 정원(3058명)의 60%를 늘리는 대규모 증원이 의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학생이 60% 늘려면 교수도 60% 늘어야 하는데 교수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국 40개 의대 학장 등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19일 성명서에서 “2000명이란 수치는 지난 1월 초 협회가 제시한 350명과 큰 괴리가 있을 뿐 아니라 전국 40개 의대·의전원의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수용 불가능한 숫자”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도 “대학 위치만 고려한 단순한 증원 허용이 아닌 각 의과대학의 인적·물적 인프라 확보 여부를 면밀하게 파악한 후 증원해야 의학교육 부실화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00명 증원했을 때 필수·지역 의료 문제가 정말 해결되는지에 대한 정부 설명이 분명하지 않다”며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정책의 정당성과 중·장기 계획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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