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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국민영웅' 내친 젤렌스키, 지지율 30%P 빠졌다 [우크라전 2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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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91%(2022년 2월 27일, 레이팅스)→81%(2023년 10월, 갤럽)→62%(2023년 12월, 키이우사회학연구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6) 대통령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지지율 추이다. 러시아 침공 직후, 미국의 도피 제안을 거부한 채 수도 키이우에 남아 결연한 항전 의지를 불태울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여·야 진영을 막론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에 열광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개전 직전인 2021년 말 30%대였던 지지율은 전쟁 직후 90%대로 치솟았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사실상 100%다. 모든 국민이 젤렌스키를 따른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전쟁 2주년을 코앞에 둔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일각에선 “젤렌스키는 자신의 실수로 인기를 잃었고, 결국 실각해 대가를 치를 것”(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란 비판도 나온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키워드로 되짚어봤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미국의 도피 제안을 거절하고 키이우에 남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미국의 도피 제안을 거절하고 키이우에 남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① 잘루즈니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기 하락은 발레리 잘루즈니(50) 전 총사령관과의 불화와 맞닿아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펴내는 정치외교 전문지 카네기폴리티카는 “지난 1년 이상 대통령과 총사령관 사이의 긴장감은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를 잠식한 이슈였다”면서 우크라이나인의 88%는 잘루즈니를 신뢰하고, 72%는 그의 해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시기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62%로 추락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22~24일 우크라이나 선거 관련 여론조사 기관이 대선 관련 정치인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은 22.74%로 잘루즈니(32.44%)에 10% 가량 크게 뒤졌다. 앞선 조사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를 박빙으로 앞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군을 통솔해온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군을 통솔해온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 EPA=연합뉴스

결국 지난 8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를 경질하자, 우크라이나 안팎에선 이를 ‘정치적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선 “최악의 인사”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도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카네기폴리티카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 중 거리에 나가 분노를 폭발하는 것은 적(러시아)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극도로 자제해왔다”면서 이번 시위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지자체장들 사이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을 두고 ‘독재’ ‘실각’ ‘대가’라는 날선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지난해 12월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고,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서 전쟁 책임론을 부각했다. 이어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잘루즈니의 의견이 옳으며, 이를 외면한 젤렌스키는 결국 실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억눌린 불만은 그의 임기가 만료되는 5월 이후 터져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외신은 전했다. 더컨버세이션은 “계엄령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긴 쉽지 않겠지만, 임기가 만료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적법성 문제는 조만간 제기될 것”이라고 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진 민간인 주거 공간을 살피고 있다. EPA=연합뉴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진 민간인 주거 공간을 살피고 있다. EPA=연합뉴스

② 측근 비리  

지난달 3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렉시 레즈니코우(57) 국방장관과 차관 6명을 경질했다. 지난해 8월엔 전국 각지의 병무청장 전원을 해임했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지도부 핵심 인력이 줄줄이 옷을 벗자,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고위층에 전방위로 불어닥친 ‘부패와의 전쟁’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 국방부 내에서 군수품 조달을 담당한 바체슬라우 샤포발로우 차관이 콩 통조림과 우유 등 일부 군납 식품 가격을 최대 10배까지 부풀려 지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지방의 병무청장들이 징집 대상자 한 명당 1만 달러(약 1300만원)씩 받고 면제 처리하는 등 병역 비리 혐의도 줄줄이 적발됐다.

2022년 미국 델러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장병들이 지게차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155mm 포탄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2022년 미국 델러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장병들이 지게차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155mm 포탄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비리 의혹도 터져나왔다. 니콜라이 아자로우 우크라이나 전 총리는 “여당이 오래된 저질 탄약을 비싼 값에 사들이며 1000억 흐리브냐(약 7조4000억원)의 예산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인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 측근이 우크라이나 지원금 가운데 최소 4억 달러(약 5300억원)를 착복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전쟁이 한창 중인 가운데 고위층의 비리 의혹이 잇따르자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코 쿠체리프 민주주의 이니셔티브 재단과 키이우사회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만연한 부패의 책임은 젤렌스키에게 있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세계 180개국 중 116위(2022년 기준)로, 유럽에서 러시아(137위) 다음으로 낮은 순위다. 유럽연합(EU)이 2022년 우크라이나에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으로 강조했을 정도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EPA=연합뉴스

올렉시 레즈니코우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EPA=연합뉴스

③ 정전 VS 영토 탈환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현재의 전선을 새로운 국경으로 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종결하는 휴전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고 전했다. 이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20%를 손에 넣게 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가 국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정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미국 정부가 올 봄 발표할 ‘우크라이나 지원 장기 전략’에서 ‘영토 탈환’이라는 기존 목표를 빼고 ‘방어전 지원’으로 대체하려 한다고 전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크렘린과의 협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군사 고문을 지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는 지난해 11월 “러시아와 전쟁 종식에 대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아레스토비치는 지난해 2월,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한 분단 형식의 휴전 방안에 대해 설명하며 “서방의 안전보장을 받는 ‘한국’과 같은 우크라이나를 세운다면 적잖은 보너스가 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양보는 미친 짓”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여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왜 테러리스트(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해야 하냐”며 돈바스‧크림반도까지 완전한 영토 탈환 및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전이 이뤄지면, 그간 비상계엄 하에 연기했던 대선·총선 실시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다, 야당에서 잘루즈니나 비탈리코 시장 등을 내세운다면 정권 교체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제5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도착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제5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도착했다. EPA=연합뉴스

이어 “젤렌스키에게 실각은 곧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엄청난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젤렌스키가 정전이 아닌 ‘영토 탈환’을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한 명분이자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전 2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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