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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시신 의문의 멍자국…반푸틴 사업가는 개목줄에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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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사망 후 행방이 묘연했던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시신이 시베리아 북부의 한 병원에 안치돼 있었으며 가슴 등에 멍 자국이 발견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나발니의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의혹만 더 키우는 양상이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추모객들에게 단기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독립언론인 노바야 가제타 유럽은 구급대원인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해 "살레하르트 마을 병원에 안치돼 있던 나발니의 시신에서 멍 자국들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제보자는 매체에 "가슴에 든 멍은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한 흔적"이라며 "교도소 직원들이 그를 살리려 했지만 아마 심장마비로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왼쪽)와 그의 부인 율리아가 2015년 4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블린스키 지방 법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왼쪽)와 그의 부인 율리아가 2015년 4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블린스키 지방 법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경련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이 붙잡았을 때 멍이 생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체는 "보통 옥중 사망자의 시신은 (부검을 위해) 바로 법의학자에게 옮겨지는데, 나발니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상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지난 16일 산책 후 쓰러졌고 의료진이 응급 조치했지만 살리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반푸틴 인사 여럿 의문사 

사망 후 사흘이 지났지만, 부검을 하지 않은 탓에 나발니의 가족은 시신조차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나발니의 모친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아들의 시신이 살레하르트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부검이 끝나야 시신을 인계할 것"이란 말만 들었다. 이 때문에 "가족에게 빨리 시신을 인도하라"는 청원도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 기준 2만9000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곤 여전히 온갖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러시아 당국이 사망 직후 미리 준비한 듯 발표를 신속히 내놓아 "돌연사라고 하기에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의문사한 사례들도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비판자들이 총에 맞거나 독살 당한 사례들이 있는데, 이 중 다수가 의문사"라고 18일 전했다. 푸틴을 비난하던 러시아 사업가 니콜라이 글루시코프가 2018년 자택에서 개 목줄에 목을 졸려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WSJ는 "글루시코프가 살해되던 밤, 자택 근처에서 목격된 검은색 밴의 탑승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18일 영국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 나발니를 추모하는 꽃과 사진 한 장이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18일 영국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 나발니를 추모하는 꽃과 사진 한 장이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아내, EU 외교장관 회의 참석

이런 가운데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앞서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지난 16~18일) 참석 중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나발나야는 국제무대에서 남편 죽음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지난 18일 X(옛 트위터)에 "나발나야의 외교장관 회의 참석을 환영한다"며 "EU 외교장관들은 러시아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지지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나발니를 기리겠다"고 밝혔다.

나발니 가족. AP=연합뉴스

나발니 가족. AP=연합뉴스

나발나야는 19일(현지시간) 남편의 죽음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알렉세이는 푸틴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은 알렉세이라는 사람 그 자체만 죽이려 한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자유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도 함께 없애고 싶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푸틴이 사흘 전 왜 남편을 죽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조만간 이에 관한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누가 어떻게 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라며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은행원 출신인 나발니야는 나발니 수감 후 푸틴 대통령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3월 대선 투표지에 나발니 이름쓰자"  

러시아 국내·외에서 나발니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당국은 그의 사망이 대규모 반정부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법원은 나발니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체포된 154명에게 집회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대 14일의 단기 징역형을 선고했다. 러시아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웹사이트 OVD-인포에 따르면 러시아 36개 도시에서 366명이 나발니를 추모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AFP통신은 러시아 각지에서 나발니 추모 공간이 철거되고, 모자를 쓴 남성들이 크렘린궁 인근 다리에 추모객이 놓아둔 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나발니의 사망 이후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푸틴은 살인마'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나발니의 사망 이후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푸틴은 살인마'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P는 "나발니 추모객 사이에 안전 수칙이 돌고 있다"며 "(구속에 대비해) 여권과 물, 완전히 충전된 휴대폰, 보조 배터리를 챙기라는 당부"라고 보도했다.

NYT "포스트 나발니 주목해야" 

뉴욕타임스(NYT)는 '포스트 나발니'의 유력 주자로 상트페테부르크시 시의원을 지낸 막심 레즈니크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나발니 사망 후 야권 통합의 구심점은 레즈니크가 제안한 '정오 시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레즈니크가 "대선이 치러지는 다음 달 17일 정오에 투표소로 나와달라"고 유권자들에게 제안하면서 이 같은 명칭이 붙었다. 나발니도 생전에 "푸틴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투표하라"고 했고 "이 시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오 시위를 지지했다.

이외에도 석유 재벌 출신의 러시아 반체제 인사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등이 나발니를 대체할 인물로 평가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러시아 국민에게 "내달 있을 대선 투표용지에 나발니의 이름을 쓰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석유회사 '유코스'를 운영하며 한때 러시아 최대 갑부에 올랐던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다가 탈세 및 돈세탁 혐의로 10년간 복역했다. 이후 수년간 망명 생활을 한 그는 현재 영국에서 러시아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추적하는 탐사보도 매체 '도시에이 센터'를 운영하며 푸틴을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 정권 비판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2022년 3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정권 비판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2022년 3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유튜브 인플루언서이자 포커 챔피언 출신인 막심 카츠도 야권에 영향력이 있다. 러시아에서 정치 활동을 하던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후 출국해 현재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해 '러시아 군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혐의'로 열린 궐석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러시아 야권 활동가인 일리아 야신이 2022년 12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심리에 앞서 법정 피고인의 사무실에 서서 미소를 짓는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야권 활동가인 일리아 야신이 2022년 12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심리에 앞서 법정 피고인의 사무실에 서서 미소를 짓는 모습. AP=연합뉴스

정치인 일리야 야신도 주목받는다. 그는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발언한 후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또 나발니의 네트워크를 관리해 온 레오니트 볼코프 등도 야권의 유력 인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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