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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사망 전 교도소 CCTV 끊겨”…시신도 행방묘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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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교도소 카메라에 잡힌 나발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 [AP=연합뉴스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교도소 카메라에 잡힌 나발니의 생전 마지막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의문사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다.

나발니는 러시아 대선(3월 15~17일)을 한 달 앞둔 지난 16일 숨졌다. 킹스칼리지런던 러시아연구소의 막심 알류코프 연구원은 17일 영국 인디펜던트에 “나발니의 죽음은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살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푸틴 정권에 의해 이번 선거가 철저히 통제되더라도, 나발니는 잠재적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반대 목소리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며 “반체제 인사들에게 저항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나발니는 2021년 1월 극단주의 활동 등의 혐의로 수감된 후에도 변호사를 통해 외부에 자신의 메시지를 활발하게 전해 왔다.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도 “나발니의 죽음은 대선을 앞둔 푸틴 정권이 반대파의 의지를 꺾는 ‘내부 단속용’”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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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발니의 죽음으로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남아 있던 푸틴의 마지막 정적이 제거됐다”며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권변호사였던 나발니는 2011년 반부패재단을 창설한 이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왔다.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주변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전쟁 초기와 달리 약화됐고,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방위비 문제 등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나발니 시신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나발니 측근들은 “그는 살해됐으며 러시아 당국이 그 흔적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의도적으로 넘겨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의 정확한 사인 조사를 위해 시신을 검시 중이란 입장이다. 앞서 지난 16일 나발니가 복역 중이던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는 “나발니가 산책 후 쓰려져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나발니가 숨지기 이틀 전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당국자들이 그가 복역 중이던 교도소를 찾아 일부 보안 카메라 등의 연결을 끊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반정부 활동가들은 “러시아 연방교정국(FSIN) 지부 보고서에 이런 언급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발니의 사망 책임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는 정면충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런 광기에 가까운 주장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선 나발니 추모 열기가 번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32개 도시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으며 지금까지 400명 이상이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이들은 나발니를 기리는 기념비에 꽃과 촛불을 놓고 추모하다가 연행됐다.

전날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대사관 앞에선 500~600명이 나발니를 추모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의해 서서히 살해당했다”고 말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나발니는 용기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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