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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삶 꿈꾸는 시인...장르 경계 넘어서는 몽환적 여정[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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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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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수마나 로이 지음
남길영·황정하 올김
바다출판사

나무가 되고 싶다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새롭다.
저자 수마나 로이는 성폭력, 명예살인에 예민한 인도 여성 시인이다. 저자도 주제도 낯설기 때문인지 카레를 처음 맛본 것 같은 생경한 독서 경험을 안긴다.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라는 제목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과 영적, 정서적 변화에 대한 글”. 저자가 직접 밝힌 집필 개요다. 나무에 대한 집요한 집착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는 얼마쯤은 나무가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물든다.

저자는 정치적 옳고 그름도, 폭식과 거식도, 열등감과 자존감도, 마감 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는 나무 같은 삶을 꿈꾼다. ‘햇빛이 오면 꿀꺽 삼키고, 밤이 오면 쉬는’ 나무의 리듬을 쫓자 놀라운 일이 생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의 리듬이 갑작스럽게 바뀌던 순간을 기억한다”며 “점점 집필 과정은 영원히 끝내고 싶지 않은 치유의 시간이 됐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식물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방사선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화분을 들고 가 X레이 사진을 찍는다. 사교 파티에 화분을 가져가 저녁 내내 식물과 춤추는 상상도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무의 연인이니까.” 또 꿈에서 깨어나서는 ‘왜 꿈속 등장한 나무를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고민한다. 무화과나무로 변한 남자친구가 열매 맺은 무화과를 따 먹는 소설에 대한 소개, 나무를 상대로 실제 성애를 느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매운맛 카레다. 인도의 대문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식물학자이자 공학자인 J C 보스의 식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소개한 부분도 흥미롭다.

책을 읽으며 내 주변 나무 같은 사람 몇몇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겨울이면 거실을 화분으로 가득 채우고 자식처럼 돌봤다. 한 선배는 북한산을 오르다 나무 하나를 껴안으며 자신의 분신이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나무를 숭배하는 저자보다 물신을 섬기는 현대인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소설보다 몽환적이지만 10쪽에 걸쳐 꼼꼼하게 각주와 참고문헌을 남긴 에세이다. 장르와 상상력의 경계를 훌훌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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