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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쿠바 ‘극비 수교’…미국에도 12시간 전에야 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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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4일 밤 전격 발표된 한국과 쿠바 간 수교에 대해 15일 대통령실은 “과거 동유럽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수교는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쿠바는 북한과 오랫동안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우방 국가이고, 1986년 3월 당시 쿠바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맺은 조약 서문에 두 나라는 형제적 연대성의 관계라는 내용이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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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이번 협상은 외교부 본부나 서명이 이뤄진 뉴욕 유엔본부 직원들도 소수만 알고 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정부는 미국에도 수교 12시간 전에야 공식적으로 수교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 된 쿠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 된 쿠바

지난 20여 년간 역대 정부는 쿠바와의 수교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윤석열 정부 역시 바통을 이었다. 지난해 5월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쿠바 외교차관과 만나면서 물꼬를 텄고,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박 전 장관은 브루노 로드리게스 파릴라 쿠바 외무장관과 비공개로 회담했다. 당시 외교부는 쿠바의 입장을 고려해 회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또 지난해 9월 로마 바티칸시국 성 베드로 광장에 삼성전자가 설치한 옥외 전광판이 들어섰는데, 수교 추진 과정에서 교황청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외교당국의 포석이 깔려 있었다는 후문이다. 교황청은 2014년 미국·쿠바 간 수교도 중재했다.

양국 간 수교 협의는 이번 설 연휴 기간에 급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유엔대표부는 최종 합의에 이른 뒤 본국에 보고했다.

지난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수교안이 비공개로 의결됐다. 국무위원들에게만 수교안 안건이 적힌 종이가 배포됐고, 회의 종료 후 이를 바로 회수했다. 국무회의 사후 결과 자료에도 ‘즉석 안건 1건’으로만 표기했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반발과 방해 공작 가능성 등을 감안해 최대한 보안을 유지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양국은 뉴욕 현지시간으로 14일 오전 8시(한국시간 14일 오후 10시) 외교 공한을 교환한 뒤 정확히 5분 뒤 이를 공표하기로 ‘분’ 단위까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교 공한 교환 사진도 외부에 배포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보안 문제 등을 고려해 두 정상이 직접 교신하지는 않았다”며 “계속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선 1960년 수교 이후 64년간 혈맹 또는 형제국의 관계를 이어온 북한으로선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북한은 15일 현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수교 당일인 지난 1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82주년을 기념해 경축연회를 진행했는데, 이 연회에 지난 1일 부임한 에두아르도 코레아 가르시아 쿠바대사가 참석한 모습이 포착됐다. 수교 당일 주북 대사를 초청한 걸 두고 “북한이 한·쿠바 수교 논의를 직전까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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